
젊을 때는 그렇게도 보고 싶던 얼굴이었다. 하루 종일 떨어져 지내다가 저녁에 마주 앉으면 그것만으로도 하루의 피로가 풀리곤 했다.

그런데 은퇴하고 하루 종일 집에서 함께 지내게 되면서 그 얼굴이 조금씩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35년을 큰 문제 없이 살아왔는데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난 뒤부터 하루에도 몇 번씩 다투는 날이 많아졌다.

어디 가느냐고 묻던 습관
처음에는 사소한 것들이었다. 아내가 외출하면 어디 가느냐고 물었고 장을 보고 오면 무얼 샀는지 확인했고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하면 언제 들어오는지 물었다.
나는 이게 관심이라고 생각했다. 함께한 세월이 오래됐으니 서로의 하루를 궁금해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시간이 지나면서 질문은 점점 잦아졌다. 나가는 발걸음마다 뒤따라오는 질문에 아내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가는 걸 그때는 눈치채지 못했다.

내 시간이 없어졌다는 말
어느 날 아내가 외출 준비를 하다 말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당신이 미워진 게 아니라 내 시간이 없어진 게 힘들어.”
그 한마디를 듣는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평생 함께하면 모든 걸 함께해야 좋은 부부라고 믿어왔는데 그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걸 그제야 처음 깨달았다.
아내는 화를 낸 것도 아니었고 원망하는 투도 아니었다. 그저 담담하게 자신의 마음을 전했을 뿐인데 그 말이 오히려 더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날 이후 며칠은 서로 서먹한 채로 지냈다. 나는 무엇을 잘못했는지 곱씹었고 아내는 평소와 다름없이 지내려 애쓰는 듯 보였다.

각자의 시간을 갖기로 한 뒤
결국 우리는 작은 규칙을 하나 만들었다. 오전 두 시간은 각자의 시간으로 정해 나는 거실에서 신문을 읽고 아내는 작은 방에서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기로 했다.
처음에는 같은 집에서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시간이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서로에게 말을 걸지 않아도 서운해하지 않기로 하자 점심을 먹을 때 대화가 오히려 더 부드러워졌다. 각자의 하루가 조금씩 생기니 저녁에 나눌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요즘은 아내가 외출한다고 해도 예전처럼 이것저것 묻지 않는다. 대신 잘 다녀오라는 말 한마디를 건네고 나도 내 시간을 채우러 나간다. 가끔은 아내가 먼저 오늘 친구들 만나고 올게, 하고 편하게 말하고 나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그제야 두 사람 모두 조금씩 숨통이 트인 걸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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