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사는 게 그렇게 아까워?” 60대 모임에서 연금 350만원 받는 친구와 손절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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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 350만 원씩 받으면서 밥 한 번 사는 게 그렇게 아까우냐는 말이 계산서와 함께 내 앞으로 밀려왔다. 그날까지 석 달째 모임 밥값은 전부 내 몫이었다.

처음엔 웃으며 냈고 두 번째는 말없이 냈다. 그런데 세 번째 계산서까지 앞에 놓이자 참았던 말이 터져 나왔고, 결국 철수는 자기 밥값만 계산서 밑에 끼운 채 식당을 나가버렸다.

집앞에 통장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사흘 뒤 집 앞에 봉투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안에는 고무줄로 묶은 낡은 통장이 들어 있었다. 1998년 철수 가게가 어려워졌을 때 내가 빌려준 돈을 갚아온 기록이 고스란히 남은 통장이었다.
메모는 없었다. 왜 그게 돌아왔는지 나는 알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친구들이 내 연금을 시기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훨씬 마음 편했기 때문이다.

연금 액수를 말한 그날부터 시작됐다
모든 게 여섯 달 전, 내가 연금 액수를 자세히 말한 날부터 시작됐다. 그냥 먹고 살 만큼 나온다고 하면 될 일이었는데, 나는 국민연금과 퇴직연금, 개인연금까지 더해 358만 원이라는 숫자를 굳이 정확히 말했다.
퇴직하고 나서 아침에 갈 곳도, 나를 기다리는 사람도 없어진 시기였다. 그 숫자를 말하는 순간만큼은 36년을 헛살지 않았다는 확인처럼 느껴졌다. 아내는 매달 돈이 들어오는 것과 갑자기 부자가 되는 건 다른 일이라고 했지만 그때는 그 말이 그저 지나치게 조심스럽게만 들렸다.
그 뒤로 내 물건마다 가격이 붙기 시작했다. 새 등산화를 신으면 연금 350은 신발부터 다르다는 농담이 따라왔고, 아들의 승진과 여행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철수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가는 걸 나는 제대로 읽지 못했다.

걱정이라 믿었던 말이 상처가 됐다
산에 다녀온 날, 철수가 딸의 취업 문제로 한숨을 쉬었을 때 나는 위로 대신 충고를 건넸다. 보험부터 정리하고 지금이라도 새는 돈을 막으라는 말이었다.
그 뒤로 철수는 자기 사정을 말하지 않았다. 손녀 이야기도, 딸 이야기도 두세 마디를 넘지 않게 되었다. 나는 그가 숫자 이야기를 어려워해서 피하는 거라고만 생각했다.
나중에 동안이를 통해 들었다. 철수가 그날 내 아들 회사에 딸의 일자리를 부탁해보려 했다는 걸, 그리고 내가 먼저 보험부터 정리하라는 말을 꺼내는 바람에 그 말을 꺼내지도 못했다는 걸..

장맛비가 내리던 날, 계산서가 또 내 앞으로 밀려왔을 때 결국 쌓였던 말들이 한꺼번에 터졌다. 철수는 지갑에서 만 원짜리 두 장을 꺼내 계산서 밑에 반듯하게 끼워두고 우산도 쓰지 않은 채 빗속으로 걸어나갔다.
그날 밤 나는 동안이가 전해준 이야기를 듣고서야 알았다. 내가 술자리에서 오래전 빌려준 돈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철수가 3년 동안 갚아온 시간은 다 지워지고 내가 베푼 일만 남아버렸다는 것을.

그해 철수 생일에는 늘 아침 일찍 걸려오던 전화가 오지 않았다. 파란 통장을 다시 꺼내 문자를 보냈다, 끝난 일을 다시 꺼내서 미안하다고. 일주일 만에 읽음 표시만 남고 답장은 오지 않았다. 지금도 매달 둘째 수요일이면 동백식당 앞을 한 번씩 지나가지만, 그 문을 다시 열지는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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