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밥 차리는 게 그렇게 힘들어?” 60대 여성이 식탁을 박차고 나온 진짜 이유
Google 검색에서 뷰어스 기사를 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식탁에 앉은 남편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였다. “집에서 하는 게 뭐가 있냐고 했지요.” 나는 손에 든 가방을 내려놓지 않았다. 평소처럼 부엌으로 돌아서는 대신 식탁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화가 나서 던지고 끝낼 말이 아니었다. “그럼 오늘 하루는 당신이 해요.” 남편이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아침 먹었으니 점심은 남편이 챙기고 저녁까지 오늘 하루는 맡아달라고 했다. 어젯밤 남편은 그 정도는 자기도 한다고 큰소리를 쳤었다.

냉장고에 반찬을 남겨두고 집을 나섰다
냉장고에는 어제 만든 나물과 두부가 있었다. 음식을 감춰 놓지 않았다, 다만 있는 것을 꺼내는 일부터 남편 몫으로 남겼을 뿐이다.
오전 열 시 반에 친구와 호숫길을 걷고 점심을 먹기로 한 약속이 있었다. 벌써 두 번이나 미룬 약속이었다. 남편은 퇴직한 뒤에도 자기 약속은 드물게 미뤘는데, 내 외출은 늘 조정할 수 있는 일 취급을 받았다.
신발 끈을 묶으며 몇 시에 오냐는 물음에 다섯 시쯤이라고, 먼저 연락하겠다고만 답했다. 허락을 기다리지 않고 현관문을 닫았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냉장고 두 번째 칸에 반찬이 있다는 말을 문자로 한 번 더 보내려다 가방에 도로 넣었다. 그 부엌은 삼십 년 넘게 함께 써온 부엌이었다.

남편이 밥솥 앞에서 눈금을 헤아리며 헤맸다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발걸음이 가벼워질수록 마음 한쪽이 불편했다. 사실 그날도 아침 여섯 시부터 움직였다. 국을 데우고 밥을 차리고 세탁기를 돌렸다. 남편이 신문을 읽는 동안 분리수거까지 내려놓았다.
열한 시가 넘자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밥솥이 비었는데 밥이 어디 있냐고 물었다. 쌀통에 쌀이 있고 계량컵도 그 안에 있다고만 답했다. 와서 해 놓고 다시 나가면 안 되냐는 물음에는 지금 친구와 있다고, 버튼은 밥솥에 쓰여 있으니 해보라고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남편은 돋보기를 꺼내 밥솥의 그림과 눈금을 살폈다고 나중에 말했다. 쌀을 씻고 물을 맞추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고, 두부를 부치다가 기름이 튀는 바람에 한 걸음 물러섰다고 했다. 왜 물기를 닦고 구워야 하는지 그제야 알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호숫길 식당에서 비빔국수를 시켰다
친구와 호숫길을 걷고 식당에 들어가 나는 남편이 좋아하지 않는 비빔국수를 골랐다. 국물을 좋아하는 남편 취향을 신경 쓰지 않고 메뉴를 고른 건 오랜만이었다. 고명이 충분한지, 국물이 뜨거운지 챙길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자꾸 웃음이 났다.
식사 중 남편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친구가 오후에 들를지도 모른다며 그때는 집에 오냐고 물었다. 나는 다섯 시쯤 간다고 했고, 손님이 오면 당신이 맞으라고, 차와 컵이 어디 있는지 알지 않냐고 답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국수 그릇을 조금 당겨 앉았다. “나도 지금 약속 지키는 중이에요.” 손님 가신 뒤 정리까지 부탁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남편은 밥그릇 하나로 끝나지 않는 설거지에 놀랐다
집에 돌아온 남편은 친구가 오기 전 밥그릇 하나만 씻으면 될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어지른 부엌을 친구에게 보이기 싫어 수세미로 팬을 닦고 젖은 행주까지 한 번 빨아두었다고 나중에 웃으며 말했다.
친구가 다녀간 뒤 남편은 냉장고를 열어 저녁 재료를 살폈다. 달걀과 애호박, 냉동실에 나눠 얼려둔 고기가 있었다. 고기가 저절로 한 끼 분량씩 들어가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장을 보고 나누고 날짜를 챙긴 사람이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실감했다고 했다.
저녁에는 된장국과 달걀말이를 만들기로 하고 대파와 두부를 사러 다녀왔다. 집에 와보니 오전에 돌린 세탁기가 다 되어 있었고, 젖은 수건을 오래 두면 냄새가 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바로 널었다고 했다. 하루 종일 집에 있었는데 자기 마음대로 빈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

여섯 시 반, 식탁에는 내 자리가 먼저 차려져 있었다
다섯 시가 조금 넘어 집에 들어서자 남편이 불부터 줄였다. 식탁에는 두 사람 몫의 밥과 국이 있었고, 내가 놓지 않은 숟가락이 내 자리에 놓여 있었다.
“다 했어. 한번 먹어 봐.” 칭찬을 기다리는 남편의 얼굴을 보며 국을 한 숟가락 떠먹었다. 따뜻하다고, 잘 먹겠다고만 말했다. 그런데 식사가 끝나자 남편이 말했다. “요리는 내가 했으니까, 설거지는 당신이 하면 되겠네.”
숟가락을 멈추고 싱크대의 냄비를 봤다. “내가 요리한 날에는 설거지도 내가 했어요. 오늘 하루 맡은 건 당신이잖아요. 끝까지 해요.” 남편은 잠시 말을 삼키더니 그릇을 포개 들고 부엌으로 갔다. 나는 창가에 앉아 차를 마셨다. 물을 너무 많이 쓰는 것 같아 한마디 하려다 멈췄다. 그릇을 빼앗아 들면 빨리 끝나겠지만, 그러면 오늘도 끝내는 사람은 결국 내가 될 것이었다.

거실로 온 남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집에서 하는 게 뭐가 있냐는 말, 잘못했어. 밥만 하면 끝나는 줄 알았지.” 나는 삼십 년 넘게 해온 일이라고, 내 약속도 당신 약속만큼 지켜달라고 했다. 남편이 도와주겠다고 하자 달력을 가져와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을 남편 몫으로 정했다. 메뉴까지 적어주려는 걸 남편이 먼저 말렸다, 먹을 건 자기가 생각해보겠다고.
그날 밤 가방은 옷장 안쪽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물론 다음 화요일부터 모든 게 매끄럽지는 않았다. 남편은 된장이 어디 있는지 또 물었고, 저녁이 늦어져 음식을 사온 날도 있었다. 하지만 친구가 다시 왔을 때 나는 또 외출했고, 남편은 이번엔 나를 붙잡지 않았다. 이 주가 지난 어느 목요일, 몇 시에 돌아오냐는 같은 질문에 나는 더 이상 움츠러들지 않고 답했다. “저녁은 내가 할게.” 돌아온 대답은 “그럼 여섯 시 반에 먹자”였다. 이번엔 내가 돌아와 밥을 차릴 시간이 아니라, 함께 먹을 시간이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