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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이 밥 먹자더니 계산을 안 하길래..” 나중에 사정을 듣고 내가 더 부끄러웠다

성장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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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예순여섯인 나는 고등학교 동창 몇 명과 두세 달에 한 번씩 만난다. 대부분 퇴직했고 이제는 만나면 회사 이야기보다 몸 아픈 이야기와 자식 이야기를 더 많이 한다.

그런데 몇 달 전, 한 친구가 먼저 밥을 먹자고 연락해왔다. 먼저 만나자고 했으니 그 친구가 밥을 사려나 보다 생각했던 것이 문제였다.

계산할 때 친구가 갑자기 말이 없어졌다

그날은 친구가 고깃집을 골랐다.
“오랜만인데 고기나 먹자.”
넷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꽤 즐겁게 먹었다. 그런데 식사를 마치고 계산서를 가져오자 친구가 갑자기 휴대전화만 바라봤다.

누군가 “오늘 네가 먹자고 했으니까 네가 쏘는 거 아니냐?”고 농담처럼 말했다.
친구는 잠시 웃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은 각자 내면 안 될까?”
순간 분위기가 묘해졌다.

금액이 큰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먼저 밥 먹자고 불러놓고 계산할 때 저러는 모습을 보니 솔직히 조금 얄미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른 친구가 말했다.
“쟤 요즘 왜 저러냐.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나도 별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며칠 뒤 다른 동창에게 친구의 사정을 들었다

며칠 뒤 함께 밥을 먹었던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그 친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너 그날 걔 때문에 기분 나빴지?”
나는 아니라고 했지만 사실 조금 그랬다.
그러자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친구가 퇴직 후 시작했던 작은 가게를 지난해 정리했고 빚도 조금 남았다고 했다. 거기에 아내가 아파 몇 달째 병원비까지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이야기는 따로 있었다.

그날 친구가 우리를 만나자고 한 이유였다.
“걔가 요즘 사람을 거의 안 만난대. 돈 쓸까 봐.”
모임에 한번 나가면 밥값과 커피값이 들고 누군가 계산하면 다음에는 자신도 사야 할 것 같아 아예 약속을 피했다는 것이다.
그날은 너무 답답해서 오랜 친구들 얼굴이라도 보고 싶어 큰마음을 먹고 연락했다고 했다.

친구가 밥을 사지 않은 것이 아니라 살 수 없었던 것이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며칠 전 내가 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먼저 먹자고 해놓고 저러냐.’
고작 밥값 몇 만 원을 두고 나는 40년 넘게 알고 지낸 친구의 사람됨까지 판단하고 있었다.

며칠 뒤 내가 먼저 그 친구에게 전화했다.
“이번 주에 시간 되냐? 국밥이나 먹자.”
친구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다 말했다.
“이번에는 내가 밥 못 산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누가 밥 사달랬냐. 내가 국밥 사고 네가 커피 사.”
잠시 조용하던 친구가 말했다.

“커피 정도는 내가 살 수 있다.”
그 말을 듣는데 이상하게 가슴이 먹먹했다. 친구에게 필요했던 것은 공짜 밥 한 끼가 아니었다. 형편이 어려워졌다고 해서 친구들 사이에서까지 초라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날 이후 우리는 비싼 식당을 찾지 않았다. 동네 국밥집에서 밥을 먹고 천 원짜리 커피를 마시면서도 예전처럼 이야기했다. 누가 얼마를 냈는지도 굳이 따지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실제 중년과 노년 친구들 사이에서 있었던 여러 사연과 경험을 바탕으로 일부 내용을 재구성한 실화다. 나이가 들면 친구의 형편도 예전과 달라질 수 있다. 퇴직할 수도 있고 사업이 어려워질 수도 있으며 갑작스럽게 가족의 병원비를 감당해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오래된 친구에게 필요한 것은 상대의 사정을 캐묻는 일이 아니라 달라진 형편에서도 계속 만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는 일인지도 모른다.

진짜 오래된 친구는 비싼 밥을 서로 사주는 사람이 아니라, 형편이 어려워졌을 때도 천 원짜리 커피 한 잔 앞에서 예전과 똑같이 웃을 수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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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곰
content@view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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