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들 부부에게서 전화가 온 건 며느리가 복직을 앞둔 어느 봄날이었다. 손주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전까지 몇 달만 봐 달라는 부탁이었다. 며느리도 아들도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고, 나는 그저 엄마니까 당연히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몇 달이면 금방이라고, 손주 재롱 보는 셈 치면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짐을 꾸렸다.

그런데 그 몇 달은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다. 아이 하나 보는 일이 이렇게 하루를 통째로 삼켜버릴 줄은 몰랐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손주를 봐주는 사람이 아니라 이 집의 살림 전체를 맡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나는 자주 그런 생각을 하며 잠을 설쳤다.

봐주는 게 살림이 됐다
처음엔 정말 아이만 보면 되는 줄 알았다. 아들 부부가 출근하면 손주 기저귀를 갈고 밥을 먹이고 낮잠을 재우는 게 내 하루의 전부일 줄 알았다.
하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설거지가 쌓이고, 빨래가 쌓이고, 저녁 찬거리를 걱정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내 몫이 되었다. 아들은 퇴근하면 소파에 앉아 “엄마, 오늘 저녁 뭐야?”라고 물었고, 나는 손주를 안은 채로 부엌에 서 있는 날이 많아졌다. 봐주러 온 건지 살림을 맡으러 온 건지, 스스로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생활비도 내 카드였다
장을 보는 것도 어느새 당연히 내 일이 되었다. 오는 길에 기저귀 좀 사다 달라, 우유가 떨어졌다, 그런 부탁이 하나둘 쌓이더니 매번 내 카드로 계산하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한 달, 두 달이 지나고 통장을 확인한 날 나는 멍해졌다. 식비며 생활용품이며 손주 물건까지 전부 내 돈으로 나가고 있었다. 용기를 내어 아들에게 생활비를 같이 부담하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짧았다. “엄마가 도와주는 거잖아,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이 집에서 어떤 자리에 있는 사람인지 알 것 같았다.

그 한마디에 무너졌다
몸은 점점 지쳐갔다. 허리도 아프고 무릎도 시큰거렸지만 누구도 내 상태를 먼저 물어봐 주지 않았다. 어느 날 너무 힘들어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엄마도 요즘 좀 힘들다.” 돌아온 대답이 가슴을 후벼팠다. “엄마가 뭐가 힘들어, 집에만 있잖아.”
그 말을 듣는 순간 참아왔던 것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새벽부터 일어나 아이를 씻기고 먹이고 재우던 날들, 내 카드로 채워온 냉장고, 아무도 물어봐 주지 않던 내 몸 상태. 나는 참지 않고 그대로 내뱉었다. “이럴거면 엄마라고 부르지마.” 아들은 그제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말을 뱉고 나서야 나는 짐을 챙겨 내 집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마시는 커피 한 잔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