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한몸 다 갖다 바쳤는데..” 60 넘어서 가족을 챙긴 것이 후회된 이유 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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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나 집안 행사 때마다 몸을 사리지 않고 챙겨온 사람들이 있다. 음식을 하고 상을 차리고 뒷정리까지 도맡으면서도 힘들다는 내색 한번 제대로 못 했다. 그렇게 몇십 년을 가족을 위해 살아왔는데, 정작 나이가 들고 나면 마음 한쪽에 후회가 자리 잡는 경우가 많다.

몸이 힘든 건 쉬면 풀리는데, 왜 이 후회는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걸까. 대체 뭘 놓치고 살아왔던 걸까.

1. 몸의 피로보다 마음의 피로가 더 오래 남아서
전을 부치고 상을 차리는 육체노동은 며칠 쉬면 어느 정도 풀린다. 하지만 그 시간 내내 웃는 얼굴을 유지하고, 힘들어도 괜찮은 척, 좋은 척하며 버틴 마음은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겉으로는 즐겁게 가족을 챙긴 것처럼 보였어도 속으로는 계속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던 셈이다. 그렇게 눌러둔 마음은 사라지지 않고 쌓여서, 몸이 아프거나 이유 없이 눈물이 나는 형태로 뒤늦게 튀어나온다.

2. 챙긴 만큼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얼마나 애썼는지는 스스로 가장 잘 안다. 하지만 그 노력을 다른 가족들도 똑같이 알고 있을 거라 기대하면 어긋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각자 자기가 한 일은 크게 기억하고, 남이 한 일은 잘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로 다른 기준으로 애쓴 걸 셈하다 보면 나만 손해 보는 것 같은 억울함이 쌓인다. 정작 서운한 이유는 도움을 못 받아서가 아니라, 내가 고생한 걸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느낌 때문인 경우가 더 많다.

3. 집에만 가면 예전 역할로 돌아가서
평소엔 어엿한 어른으로 살다가도 명절만 되면 예전의 그 자리로 돌아간다. 살림을 도맡던 사람은 계속 부엌에 서 있고, 말없이 앉아만 있던 사람은 여전히 아무 말도 안 한다. 정해진 배역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로 세월만 흘러간 것이다.
그 자리를 벗어나려면 한 번은 부딪히고 관계가 시끄러워지는 걸 감수해야 하는데, 그게 두려워 계속 참고 눌러앉는 쪽을 택하게 된다. 그렇게 몇십 년이 지나고 나면, 정작 내 인생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는 후회만 남는다.

결국 가족을 챙긴 게 후회로 남는 건 정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참고 억누른 마음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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