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고기와 돼지고기 같은 적색육에는 설탕이나 정제 탄수화물이 많지 않다. 그런데 장기간 사람들을 추적한 대규모 연구에서는 적색육 섭취량이 많을수록 제2형 당뇨병 발생률이 높아지는 연관성이 반복해서 관찰됐다. 혈당을 직접 빠르게 올리는 음식이 아닌데도 이런 결과가 나타나는 이유는 헴철과 포화지방, 체중 증가, 산화 스트레스 등 여러 대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적색육은 혈당을 곧바로 올리는 음식은 아니지만 장기적인 위험은 다르다
당뇨병을 생각하면 설탕과 흰쌀밥, 빵, 음료처럼 혈당을 빠르게 올리는 음식부터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제2형 당뇨병은 한 끼 식후 혈당만으로 발생하는 질환이 아니다. 오랜 기간 인슐린 저항성이 높아지고 췌장의 인슐린 분비 능력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발병한다. 소고기와 돼지고기, 양고기 같은 적색육은 탄수화물이 거의 없어 먹은 직후 혈당을 크게 올리는 음식은 아니다.
그럼에도 약 197만 명을 포함한 국제 코호트 분석에서는 가공하지 않은 적색육을 하루 100g 더 섭취할 때 제2형 당뇨병 발생률이 약 10% 높은 연관성이 나타났고, 가공육은 하루 50g 증가할 때 약 15% 높은 연관성이 관찰됐다. 즉 적색육과 당뇨의 관계는 ‘고기를 먹으면 즉시 혈당이 치솟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장기간의 섭취 패턴과 대사 건강의 관계로 이해해야 한다.

적색육에 풍부한 ‘헴철’이 주목받고 있다
적색육과 당뇨병의 관계를 설명하는 물질 가운데 최근 특히 주목받는 것이 헴철이다. 철분은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의 헤모글로빈을 만드는 데 반드시 필요한 영양소이며, 고기에 들어 있는 헴철은 식물성 식품의 비헴철보다 체내 흡수율이 높은 편이다. 문제는 필요 이상으로 축적되는 철이 산화 반응을 촉진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산화 스트레스가 증가하면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 베타세포와 인슐린 작용에 관여하는 조직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기전이 제시돼 왔다.
2024년 하버드 공중보건대학 연구진이 발표한 연구에서도 헴철 섭취량이 가장 높은 집단은 가장 낮은 집단보다 제2형 당뇨병 위험이 26% 높게 나타났으며, 혈중 대사물질 분석에서도 인슐린 저항성과 관련된 지표들이 확인됐다. 그렇다고 철분 자체를 피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철분은 필수 영양소이며, 현재 연구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적색육을 통한 높은 헴철 섭취와 장기간의 대사 위험 사이의 관계다.

포화지방이 많은 부위는 인슐린 저항성 관리에도 불리할 수 있다
삼겹살이나 갈비처럼 지방이 많은 적색육을 자주 먹는 식습관에서는 포화지방 섭취량도 함께 증가하기 쉽다. 포화지방이 많은 식단은 혈중 LDL 콜레스테롤을 높이는 대표적인 요인이며, 일부 연구에서는 지방의 종류가 세포의 인슐린 신호와 지방 대사에 영향을 줄 가능성도 제시한다. 다만 적색육의 포화지방만으로 당뇨병 위험 증가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실제로 적색육 섭취와 당뇨 위험의 관계는 체중과 전체 식습관, 헴철 등 여러 요소가 얽혀 있다.
미국당뇨병학회는 당뇨병이 있거나 위험이 높은 사람에게 포화지방이 많은 적색육 섭취를 제한하고 콩과 견과류, 씨앗류 같은 식물성 단백질을 식단에 더 많이 포함하도록 권고한다. 고기를 먹더라도 삼겹살과 갈비처럼 지방이 많은 부위에 치우치기보다 살코기를 선택하고 채소와 통곡물을 충분히 곁들이는 것이 좋다.

적색육을 많이 먹는 식생활은 체중 증가와도 연결될 수 있다
제2형 당뇨병에서 빼놓기 어려운 위험요인이 내장지방과 과체중이다. 특히 복부지방이 증가하면 지방조직에서 나오는 유리지방산과 염증 관련 물질의 변화가 간과 근육의 인슐린 작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적색육 자체가 반드시 비만을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삼겹살과 갈비, 햄버거처럼 열량 밀도가 높은 형태로 자주 먹으면 하루 전체 에너지 섭취량이 증가하기 쉽다. 고기와 함께 먹는 흰쌀밥과 냉면, 술, 달콤한 양념까지 더해지면 한 끼의 열량은 더욱 커진다.
장기간의 관찰연구에서 체질량지수 등을 통계적으로 보정한 뒤에도 적색육과 당뇨병 사이의 연관성이 남아 있지만, 체중과 식생활 전체가 관계의 일부를 설명하는 것으로 보고된다. 따라서 혈당을 관리할 때는 특정 영양소 하나만 떼어보기보다 고기를 어떤 부위로 얼마나 자주, 무엇과 함께 먹는지를 살펴야 한다.

햄·소시지·베이컨 같은 가공육은 더 주의할 필요가 있다
적색육 가운데에서도 연구에서 비교적 일관되게 강한 연관성이 나타나는 것은 가공육이다. 베이컨과 햄, 소시지처럼 염장·훈연·가공한 육류에는 적색육 자체의 헴철과 포화지방뿐 아니라 제품에 따라 많은 나트륨과 아질산염·질산염 같은 첨가물이 포함될 수 있다. 가공 과정이나 높은 온도에서 조리할 때 생성되는 최종당화산물 등도 인슐린 저항성과 산화 스트레스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후보 기전으로 연구되고 있다.
2024년 국제 연구에서는 가공육을 하루 50g 더 먹는 것과 제2형 당뇨병 발생률이 약 15% 높아지는 것이 연관됐다. 2026년 미국당뇨병학회 진료지침 역시 당뇨병 및 당뇨병 전단계 식단에서 적색육과 가공식품을 줄이고 비전분 채소와 과일, 콩류, 통곡물, 견과류와 씨앗류 등을 강조하고 있다.

고기를 끊기보다 단백질 공급원을 다양하게 바꾸는 방법이 현실적이다
적색육에는 양질의 단백질과 철분, 아연, 비타민B12처럼 중요한 영양소도 들어 있기 때문에 당뇨 예방을 위해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무조건 먹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식단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다. 매 끼니 고기를 먹고 있다면 일부를 두부와 콩, 렌틸콩, 생선, 견과류 같은 식품으로 바꾸는 방법이 있다.
미국당뇨병학회도 당뇨병 예방과 관리를 위한 식사에서 콩류와 견과류 등 식물성 단백질의 비중을 높이도록 권고한다. 고기를 먹는 날에는 삼겹살이나 갈비보다 지방이 적은 부위를 고르고 햄·소시지 같은 가공육의 빈도를 줄이는 것도 방법이다. 결국 당뇨병 예방 식단의 핵심은 탄수화물만 줄이는 것이 아니라 단백질과 지방을 어디에서 얻을 것인지까지 함께 관리하는 데 있다.
한눈에 보는 핵심 정리
헴철: 적색육에 풍부하며 높은 섭취량이 산화 스트레스와 인슐린 저항성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연구되고 있다.
포화지방: 지방이 많은 적색육을 자주 먹으면 포화지방과 열량 섭취가 늘기 쉽다.
가공육: 햄·소시지·베이컨은 적색육 가운데 당뇨병 발생과 더 강한 연관성이 관찰되는 편이다.
식단 관리: 적색육의 일부를 콩·두부·생선·견과류 등으로 바꾸고 단백질 공급원을 다양화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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