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베이비시터도 아니고..” 손자 돌봐주는 60대 할머니가 자식들에게 실망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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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 시, 겨우 손자를 재우고 방문을 소리 없이 닫았다.
부엌에 나와 보니 아침 설거지가 그대로였다. 식탁 한쪽에는 데우다 만 내 밥그릇이 식어 있었다. 손자에게 밥을 먹이느라 두 번 데우고 세 번 떠먹이는 사이, 내 점심은 그렇게 잊혔다.
물 한 잔 마시려고 휴대폰을 들었다. 며느리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어머니, 오늘 낮잠 너무 늦게 재우신 것 같아요.”

답장을 세 번 쓰다 지웠다
아이가 세 시 반까지 안 자겠다고 버텼다고 쓰려다 지웠다. 쓰면 변명이 될 것 같았다. 변명을 하면 며느리가 미안해할 것 같았다.
결국 “알았다” 세 글자만 보냈다.
아들 내외가 맞벌이를 시작하면서 일주일에 나흘씩 손자를 봐준 지 일 년이 넘었다. 손자는 세상에서 제일 예뻤다. 웃으면 하루 피로가 다 풀렸다.
그런데 저녁만 되면 이상하게 서러웠다.
몸이 힘들어서만은 아니었다. 아이를 맡는 건 나인데, 정하는 건 하나도 내가 아니었다. 낮잠 시간도, 간식도, 옷 입히는 것까지 며느리가 정해둔 대로 해야 했다. 손자에게 사탕 하나 쥐여주고도 괜히 죄지은 사람처럼 마음이 쓰였다.

열이 나는 아이를 안고 십 분을 서 있었다
어느 날 오후, 손자 이마가 뜨거웠다. 손등으로 짚어보니 열이 꽤 있었다.
내 자식 키울 때는 바로 옷 입혀 업고 병원으로 뛰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먼저 며느리에게 전화를 걸어야 했다.
받지 않았다. 문자를 남기고 기다렸다.
아이를 안고 거실에 선 채로 십 분이 지났다. 그 십 분이 그렇게 길 수가 없었다.
저녁에 퇴근한 며느리가 물었다.
“어머니, 열은 몇 도였어요? 해열제는 언제 먹이셨어요?”
나무라는 말투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날 밤 나는 잠을 설쳤다. 혼난 것도 아닌데, 내가 뭘 잘못한 것만 같았다.

“엄마 아니면 누가 봐줘?”라는 말을 들었다
그 무렵부터 무릎이 시큰거렸다. 손자를 안고 계단을 오를 때마다 다리가 휘청했다. 말하지 않았다. 말하면 다들 걱정할 것 같았다.
동창 모임에 나갔더니 친구들이 부러워했다.
“아기 냄새 맡고 살아서 좋겠다.”
“복이지 뭐.”
웃으며 대답했다. 집에 돌아와 현관에서 신발을 벗다가 눈물이 났다. 힘들다고 하면 복도 모르는 사람이 될 것 같아서, 그 말을 끝내 아무에게도 못 했다.
그러다 한 달 전쯤이었다. 무릎이 너무 아파 병원 예약을 잡은 날,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오늘 회의가 길어져서 그런데 조금만 더 봐주면 안 돼? 엄마 아니면 누가 봐줘.”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내가 베이비시터도 아니고.”
전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아들은 미안하다고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수화기를 든 채로 한참을 서 있었다. 아들에게 화가 난 건지, 그런 말을 해버린 나한테 화가 난 건지 알 수 없었다.

며느리가 식탁 위의 밥그릇을 봤다
그날 저녁, 아들과 며느리가 같이 왔다. 며느리가 부엌에 들어서다 멈춰 섰다. 식탁 위에 손도 안 댄 내 밥그릇이 그대로 있었다.
“어머니, 점심 안 드셨어요?”
대답을 못 했다. 며느리가 내 앞에 앉더니 한참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다.
“저희가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아들이 무릎은 괜찮냐고 물었다. 그제야 병원 예약 얘기를 했다. 아들 얼굴이 굳었다. 왜 진작 말하지 않았냐고 했다. 나는 그냥 웃었다.

그날 우리는 처음으로 식탁에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손자는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 아홉 시부터 다섯 시까지만 보기로 했다. 열이 삼십팔 도가 넘으면 전화 기다리지 않고 내가 바로 병원에 데려가기로 했다. 토요일 오전은 온전히 내 시간으로 비워두기로 했다.
며느리가 말했다.
“어머니가 오래 봐주시려면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다음 주 화요일 아침, 현관문이 열리고 손자가 뛰어 들어왔다. 며느리는 작은 도시락통 하나를 내 손에 쥐여주고 출근했다. 뚜껑 위에 메모지가 붙어 있었다.
“어머니 점심은 꼭 드세요.”
손자를 재우고 나서, 나는 일 년 만에 식기 전에 밥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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