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도 친구도 아닙니다..” 60살인 내가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준비한 것 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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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 새벽, 화장실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났다.
남편이 세면대를 붙잡고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119부터 눌렀다. 구급차에 같이 올라타고 나서야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급실에서 간호사가 차트를 들고 물었다.
“평소 드시는 약 있으세요? 다니시는 병원은요?”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35년을 같이 살았는데 남편이 먹는 혈압약 이름 하나 몰랐다.
뒤늦게 달려온 아들도 고개만 저었다. 둘이서 휴대폰 사진첩을 뒤져 약 봉투 사진이라도 찾으려 애썼다.
다행히 남편은 사흘 만에 퇴원했다. 의사는 구급차가 빨리 와서 다행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날 응급실에서 든 생각이 오래 떠나지 않았다.
“내가 쓰러지면 우리 애들도 저렇게 서 있겠구나.”

1. 서랍 맨 위 칸에 넣어둔 종이 한 장
퇴원한 다음 날, 나는 볼펜과 공책 한 장을 꺼냈다.
맨 위에는 큰 글씨로 ‘쓰러지면 119 먼저’라고 썼다. 그날 새벽 아들한테 먼저 전화했다면 구급차는 그만큼 늦게 왔을 것이다.
그 아래로 먹는 약 이름과 하루 몇 알인지 적었다. 다니는 내과와 치과 이름, 전화번호도 적었다. 들어둔 보험 회사와 통장이 어느 은행에 있는지도 한 줄씩 써 내려갔다.
다 쓰고 나니 고작 한 장이었다. 이 한 장이 없어서 그날 그렇게 헤맸나 싶었다.
1년에 한 번, 생일 즈음에 고쳐 쓰기로 했다. 약이 바뀌거나 병원을 옮기면 그때그때 줄을 긋고 새로 적는다.
종이는 안방 서랍 맨 위 칸에 넣었다. 그리고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무슨 일 생기면 안방 서랍부터 열어봐.”
딸은 왜 그런 말을 하냐며 화를 냈다. 나는 그냥 웃었다.

2. 공과금 고지서 앞에서 처음 막막해졌다
남편이 입원해 있던 사흘 동안 우편함에 고지서가 쌓였다.
관리비, 가스비, 남편 실손보험 청구 서류까지. 결혼하고 한 번도 들여다본 적 없는 것들이었다. 돈 관리는 늘 남편 몫이었다.
결국 밤 열 시에 퇴근한 아들을 불렀다. 피곤한 얼굴로 서류를 넘기는 아들을 보며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퇴원한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 한 달에 하루는 서로 일 바꿔서 해봐요.”
그날부터 매달 첫째 토요일, 남편은 세탁기를 돌리고 나는 휴대폰으로 은행 앱을 열었다. 첫 달 남편은 흰 와이셔츠를 빨간 행주와 같이 빨아 분홍색으로 만들어놓았다.
“이걸 어떻게 입고 나가.”
남편이 셔츠를 들고 멋쩍게 서 있었다. 둘이 한참을 웃었다. 그렇게 크게 같이 웃어본 게 몇 년 만이었는지 모르겠다.
요즘은 남편이 관리비 고지서 보는 법을 가르쳐주고, 나는 남편에게 국 끓이는 법을 가르쳐준다. 서로의 일을 배우다 보니 대화도 부쩍 늘었다.

3. 휴대폰에 저장한 번호 하나
내 휴대폰에는 ‘생일 선물’이라는 이름으로 저장된 번호가 있다. 동네 건강검진센터 번호다.
매년 생일이 있는 달이 되면 그 번호로 전화를 걸어 검진을 예약한다. 아프고 나서 병원에 가는 게 아니라, 아프기 전에 먼저 가보기로 한 것이다.
그 옆에는 작은 통장도 하나 만들었다. 겉면에 매직으로 ‘이, 눈, 무릎’이라고 썼다. 한 달에 십만 원씩, 검진에서 뭐가 나오면 꺼내 쓸 돈이다.
손목에 차는 건강 관리 기기도 하나 장만했다. 심장 박동과 산소포화도를 실시간으로 재주고, 이상이 있으면 바로 알려준다.
남편이 외출한 날 혼자 쓰러지면 전화기를 들 힘도 없을 수 있다. 그래서 넘어진 채 움직이지 않으면 119와 딸에게 저절로 연락이 가도록 설정해두었다. 손목에 차고 있는 것만으로도 혼자 있는 시간이 덜 무섭다.
올봄 검진에서 잇몸이 많이 내려앉았다는 말을 들었다. 예전 같으면 며칠을 끙끙 앓았을 거다.
이번에는 그 통장에서 돈을 꺼내 치료를 마쳤다. 생활비 통장은 건드리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손을 벌리지 않았다. 자식들에게는 다 끝나고 나서야 이야기했다.

얼마 전 딸이 집에 왔다가 몰래 안방 서랍을 열어본 모양이었다.
저녁에 서랍을 열어보니 내가 쓴 종이 맨 아래에 낯선 글씨가 한 줄 늘어 있었다.
‘비상 연락처: 큰딸. 엄마, 119 먼저 부르고 그다음엔 꼭 나한테 전화해.’
나는 그 종이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다시 서랍에 넣었다.
짐이 되지 않으려고 시작한 준비였는데, 그 한 줄이 왜 이렇게 든든했을까.
※ 갑자기 쓰러지거나 숨이 차고 가슴이 아플 때는 가족보다 119에 먼저 연락하세요.
본 채널은 당신이 건강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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