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모가 자식에게 재산을 나눠 줄 때 가장 어려운 것은 공평함입니다. 형편이 어려운 자식에게 조금 더 주고 싶은 마음, 그것이 부모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러나 그 선택 뒤에는 늘 다른 자식이 서운해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습니다.
올해 일흔다섯이 된 문태식 씨는 인천 부평에서 40년 동안 작은 인쇄소를 운영하다 은퇴했습니다. 아내 영희 씨와 함께 평생 잉크 냄새를 맡으며 명함과 전단지를 찍어 남매를 키웠습니다. 부부가 평생 모은 재산은 부평의 낡은 단독주택 한 채와, 십수 년 전 대출을 끼고 장만한 30평대 아파트 한 채가 전부였습니다.
큰딸 서연이는 마흔다섯, 아들 서준이는 마흔둘이었습니다. 딸은 7년 전 이혼한 뒤 혼자서 초등학생 손녀 둘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월세 단칸방을 전전하며 마트 계산원으로 일하는 딸을 볼 때마다 영희 씨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딸은 한겨울에도 보일러를 아끼느라 손녀들에게 내복을 두 겹씩 입혀 재웠습니다. 집주인이 월세를 올릴 때마다 이삿짐을 싸야 했고, 그때마다 손녀들은 전학을 가야 했습니다. 어느 날 큰손녀가 할머니 품에 안겨 “할머니, 우리는 언제 이사 안 가도 되는 집에 살아?” 하고 물었을 때, 영희 씨는 그날 밤 한숨도 잘 수 없었습니다.
아들 서준이는 서울의 한 제조 회사에서 과장으로 일하며 맞벌이하는 아내와 함께 성실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말수가 적고 속이 깊은 아이였습니다. 부모에게 무엇을 해 달라고 조르는 법이 없었고, 힘든 일이 있어도 혼자 삭이는 성격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아들은 인쇄소 일로 늦게 들어오는 부모를 기다리며 혼자 라면을 끓여 먹고 누나 숙제까지 챙기던 아이였습니다. 일곱 살 생일에 태식 씨가 시장에서 사 온 빨간 장난감 트럭 하나를 받고 “아빠, 나 이거 평생 간직할게”라며 품에 안고 잤던 아이였습니다. 그런 아들이었기에 태식 씨는 아들이 누나의 처지를 이해해 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5년 전 어느 날 밤, 태식 씨는 아내와 오래 상의한 끝에 결심을 내렸습니다. 세를 주고 있던 아파트를 딸에게 증여하기로 한 것입니다. 시세로 4억 원이 넘는 집이었습니다.
“서연이가 애 둘 데리고 월세방 사는 걸 더는 못 보겠소. 서준이는 제 힘으로 잘 살고 있으니… 서운하겠지만 이해해 주겠지.” 영희 씨도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두 노인은 며칠 밤을 뒤척였습니다. 아들에게는 줄 것이 낡은 단독주택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마저도 두 사람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는 살아야 할 집이었습니다. ‘서준이가 나중에 우리 원망하지는 않을까.’ 그 걱정이 노부부의 가슴에 무겁게 내려앉았습니다.
태식 씨는 주말에 남매를 집으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결정을 알렸습니다. “서준아, 미안하다. 아파트는 누나한테 주기로 했다. 너한테는 줄 게 없구나. 대신 이 집은 나중에 너한테…”
아들 서준이는 아버지의 말을 끝까지 듣고 잠시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더니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잘하셨어요, 아버지. 누나한테 꼭 필요한 집이에요. 저는 괜찮아요.” 딸 서연이는 그 자리에서 동생의 손을 잡고 펑펑 울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있고 나서부터 아들의 발걸음이 눈에 띄게 뜸해졌습니다. 예전에는 한 달에 한 번은 꼭 찾아오던 아들이 명절에나 겨우 얼굴을 비쳤고, 전화를 걸어도 “바빠서요, 다음에 갈게요”라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영희 씨는 밤마다 한숨을 쉬었습니다. “여보, 서준이가 겉으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많이 서운했나 봐요. 그러니까 저렇게 발길을 끊는 거겠죠.” 태식 씨도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아들에게 상처를 준 것 같아 먼저 전화를 걸기도 미안했습니다.
경로당 친구들은 태식 씨의 이야기를 듣고 혀를 찼습니다. “그러니까 재산은 똑같이 나눠야 한다니까. 아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서운하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태식 씨는 자신이 아들에게 큰 죄를 지은 것만 같았습니다. 혹시 아들이 아버지를 원망하며 영영 멀어지는 것은 아닐까, 밤마다 그런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3년 전 아들의 생일에는 태식 씨가 큰마음을 먹고 서울까지 찾아가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봉투를 받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이러지 마세요. 저 정말 괜찮아요.” 그 말이 오히려 태식 씨의 가슴을 더 아프게 했습니다. 아들은 끝내 섭섭하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 미안했습니다.
그사이 딸 서연이는 아파트에 들어가 아이들과 안정을 찾았습니다. 손녀들은 처음으로 자기 방이 생겼다며 좋아했습니다. 딸이 행복해하는 모습은 고마웠지만, 그럴수록 아들 생각에 노부부의 마음 한편이 시렸습니다.

그리고 올가을, 태식 씨의 일흔다섯 번째 생일이 다가왔습니다. 딸은 손녀들과 케이크를 들고 찾아왔지만, 아들은 전화로만 짧게 인사를 했습니다. “아버지, 생신 축하드려요. 이번에 회사 일이 많아서 못 내려가요. 대신 택배로 선물 하나 보냈어요.”
생일 다음 날 오후, 현관 앞에 작은 상자 하나가 도착했습니다. 아들의 이름이 적힌 택배였습니다. 태식 씨는 ‘넥타이나 영양제겠지’ 하며 별 기대 없이 상자를 열었습니다.
상자 안에는 포장지에 싼 물건 대신 낡은 은행 통장 하나와 하얀 편지 봉투, 그리고 오래된 장난감 트럭 하나가 들어 있었습니다. 페인트가 벗겨지고 바퀴 하나가 빠진 그 빨간 트럭은, 30여 년 전 태식 씨가 인쇄소 일을 마치고 시장에서 사 와 어린 아들에게 쥐여 주었던 생일 선물이었습니다.
태식 씨는 의아한 마음으로 통장을 펼쳤습니다. 통장의 예금주는 아들 문서준이었고, 통장 표지에는 볼펜으로 ‘아버지 어머니 병원비’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통장 안에는 5년 전 그달부터 단 한 달도 빠짐없이 매달 20만 원씩 입금된 내역이 빼곡하게 찍혀 있었습니다. 마지막 장의 잔액은 1,200만 원이 넘어 있었습니다. 아파트를 누나에게 물려주던 바로 그달부터 시작된 적금이었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편지 봉투를 열자 아들의 반듯한 글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생신 축하드려요. 먼저 그동안 자주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서운하셨죠. 사실 2년 전에 회사가 구조조정을 해서 제가 1년 넘게 일을 쉬었습니다. 다시 작은 회사에 들어가 일하고 있는데, 그 모습을 보여 드리기가 너무 부끄러웠어요. 아버지 어머니가 걱정하실까 봐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아파트를 누나에게 주셨을 때 저는 정말 서운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감사했어요. 누나가 애들 데리고 고생하는 거, 제가 해 줄 수 없는 걸 아버지가 대신 해 주셨으니까요. 그때 다짐했어요. 집은 누나가 받았으니, 나중에 아버지 어머니 아프실 때 병원비는 제가 책임지겠다고요. 쉬는 동안에도 이 통장만큼은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꼭 채웠어요.]
[이 트럭, 기억나세요? 아버지가 제 일곱 살 생일에 사 주신 거예요. 저는 이걸 받고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어요. 아버지가 주신 건 집이 아니어도 늘 충분했어요. 저는 아버지 아들로 태어난 게 제일 큰 재산이에요. 사랑합니다.]

편지를 다 읽기도 전에 태식 씨는 현관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손에 쥔 낡은 트럭이 덜덜 떨렸습니다. 5년 동안 아들이 서운해서 발길을 끊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실직의 고통을 혼자 견디면서도 부모의 병원비를 한 달도 빠짐없이 모으고 있었던 것입니다.
부엌에서 나온 영희 씨가 남편의 손에 들린 편지를 읽고는 그대로 무릎을 꿇고 오열했습니다. “우리 서준이가… 우리 서준이가 이렇게 속이 깊은 줄도 모르고… 서운해서 안 오는 줄로만 알았는데…”
태식 씨는 눈물을 닦을 겨를도 없이 휴대전화를 들어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신호가 몇 번 가고 아들이 받았습니다. “아버지, 선물 받으셨어요?” 태식 씨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겨우 목소리를 냈습니다.
“서준아… 이 못난 아비가 너를 몰라봤구나. 힘들었으면 말을 하지… 왜 혼자 다 짊어졌냐…” 수화기 너머로 아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버지, 저 이제 괜찮아요. 회사도 다시 자리 잡았어요. 이번 주말에 꼭 갈게요.”

그 주말, 아들은 아내와 함께 부평 본가를 찾았습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태식 씨는 아들을 끌어안았습니다. 일흔다섯 노인의 굽은 등이 아들의 품 안에서 한참을 들썩였습니다. 딸 서연이도 손녀들을 데리고 달려와 동생의 손을 붙잡고 울었습니다.
점심은 아들이 어릴 때 가족끼리 자주 가던 동네 중국집에서 먹었습니다. 짜장면 다섯 그릇과 탕수육 한 접시가 상에 올랐습니다. 아들이 아버지 그릇에 짜장 소스를 듬뿍 덜어 주며 웃었습니다. “아버지, 옛날에 인쇄소 일 끝나고 이거 사 주실 때가 제일 좋았어요.”
태식 씨는 통장을 아들 손에 다시 쥐여 주려 했지만 아들은 받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그건 아버지 어머니 거예요. 대신 오래오래 건강하게 계셔 주세요. 그게 제 생일 선물이에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서는 시간을 건너온 편지 한 통이 사람들의 마음을 잇고 인생을 바꿔 놓습니다. 가족 사이에도 그런 편지가 필요합니다. 말하지 못한 진심은 오해를 낳지만, 꺼내 놓은 진심 한 줄은 수년 동안 쌓인 서운함을 단숨에 녹여 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똑같이 나눠 주지 못했다고 해서 사랑이 모자랐던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자식이 연락이 뜸하다고 해서 마음이 멀어진 것도 아닙니다. 서로의 마음을 짐작으로만 판단하지 말고, 한 번 더 묻고 한 번 더 표현하는 것이 가족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그날 저녁, 태식 씨는 거실 장식장 맨 윗칸에 바퀴 빠진 빨간 트럭을 올려놓았습니다. 창밖으로는 가을 노을이 붉게 물들고 있었습니다. 일흔다섯 해를 살며 받은 수많은 생일 선물 가운데, 그 낡은 트럭은 세상에서 가장 값진 선물이 되어 노부부의 거실을 환하게 밝혀 주고 있었습니다.
출처 :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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