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 가게 보증금 3000만원 빌려줬는데..” 10년 만에 걸려 온 전화에 숨이 멎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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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친구가 어려울 때 돈을 빌려 달라고 하면 거절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수십 년 우정이 고작 돈 몇 푼에 무너질까 봐, 차마 안 된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돈을 빌려준 그날부터 우정의 무게는 조용히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인천 부평에 사는 최병철 씨는 올해 일흔한 살입니다. 서른 해 넘게 개인택시를 몰며 아내 미숙 씨와 두 딸을 키웠습니다. 하루 열두 시간씩 운전대를 잡느라 허리 디스크를 달고 살았지만, 성실하게 모은 돈으로 작은 빌라 한 채를 마련했습니다.
손님 중에는 술에 취해 시비를 거는 사람도 있었고, 요금을 내지 않고 내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병철 씨는 한 번도 언성을 높인 적이 없었습니다. “택시는 사람 장사”라며 늘 웃는 얼굴로 손님을 맞았고, 그 덕에 단골 손님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병철 씨에게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단짝으로 지낸 친구 김만석이 있었습니다. 학창 시절 도시락을 나눠 먹고, 군대 휴가 때마다 함께 술잔을 기울이던 사이였습니다. 서로의 결혼식에서 사회를 봐 준 것도 두 사람이었습니다.
만석은 넉살이 좋고 말을 잘해 어디서나 분위기를 띄우는 친구였습니다. 병철 씨가 아버지를 여의고 힘들어하던 스무 살 무렵, 일주일 내내 집에 찾아와 곁을 지켜 준 사람도 만석이었습니다. 병철 씨는 그 고마움을 평생 잊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11년 전 어느 봄날, 만석이 병철 씨를 찾아왔습니다. 다니던 회사에서 명예퇴직을 하고 동네에 치킨집을 차리려는데 가게 보증금이 모자란다고 했습니다.
“병철아, 딱 3천만 원만 빌려주라. 1년 안에 꼭 갚을게. 너 아니면 부탁할 데가 없다.”
3천만 원은 병철 씨 부부가 딸들 결혼 자금으로 모아 둔 돈이었습니다. 아내 미숙 씨는 반대했습니다. “여보, 친구 사이에 돈 거래하면 사람도 잃고 돈도 잃는대요.” 하지만 병철 씨는 친구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큰딸 혜진이는 그해 가을 결혼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미숙 씨는 그 돈으로 혼수를 마련해 주고 싶다며 몇 년 동안 적금을 붓고 또 부었습니다. 병철 씨도 그 돈이 어떤 돈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아내의 말에 마음이 쓰였던 병철 씨는 만석에게 차용증 한 장을 써 달라고 했습니다. 만석은 “우리 사이에 무슨” 하면서도 순순히 이름을 쓰고 도장을 찍었습니다. 갚기로 한 날은 이듬해 봄으로 적었습니다.

치킨집은 처음 몇 달 동안 장사가 잘되는 듯했습니다. 병철 씨도 택시 손님을 내려 주고 일부러 들러 맥주 한 잔씩 팔아 주곤 했습니다.
개업 날에는 동창들이 화환을 보내고 우르르 몰려가 자리를 채웠습니다. 만석은 앞치마를 두르고 테이블마다 돌며 “다 병철이 덕분이다”라고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며 병철 씨는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고, 아내에게도 “봐라, 만석이 잘할 거다”라며 웃었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나자 만석의 연락이 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약속한 날이 다가와 병철 씨가 조심스럽게 돈 이야기를 꺼내자 만석은 “요즘 장사가 좀 어렵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몇 달 뒤, 치킨집 문에는 ‘임대 문의’라는 종이가 붙었습니다. 만석의 휴대전화는 꺼져 있었고, 살던 집도 이사를 간 뒤였습니다. 동창들에게 수소문해 봐도 아무도 행방을 알지 못했습니다.
병철 씨는 한동안 밥이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돈도 돈이지만, 40년 우정이 그렇게 허무하게 끝났다는 사실이 더 아팠습니다.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이 병철 씨를 더 고개 숙이게 만들었습니다. 딸들 결혼식은 대출을 받아 겨우 치렀습니다.
큰딸 결혼식 날, 병철 씨는 하객석 한쪽에 만석의 자리를 남겨 두었습니다. 혹시라도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끝내 그 자리는 비어 있었고, 사회자가 신부 아버지를 부를 때 병철 씨는 애써 웃음을 지었습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습니다. 병철 씨는 택시를 그만두고 아파트 경비 일을 하며 지냈습니다. 만석이라는 이름은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 두고 살았습니다.
경비실 작은 창문 너머로 계절이 몇 번이고 바뀌었습니다. 병철 씨는 주민들의 택배를 정리하고 분리수거장을 치우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가끔 텔레비전에서 치킨 광고가 나오면 채널을 돌렸고, 동창 모임에도 발길을 끊었습니다. 누군가 만석의 이야기를 꺼낼까 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올가을 어느 저녁,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병철 씨는 숨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병철아… 나다, 만석이.”
10년 만에 듣는 목소리였습니다. 병철 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수화기를 꼭 쥐고 있었습니다. 만석은 그동안 미안했다는 말을 몇 번 하더니, 곧 본론을 꺼냈습니다.
“내가 지금 좀 급해서 그런데… 500만 원만 융통해 줄 수 있겠냐. 이번엔 진짜 금방 갚을게.”

전화를 끊고 나서도 병철 씨의 손은 한참 동안 떨렸습니다. 사과하러 전화한 줄 알았던 친구는, 또다시 돈을 빌리러 온 것이었습니다.
다음 날, 병철 씨는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만석이 몇 년 전부터 경기도에서 꽤 큰 식당을 운영하고 있고, 아들 명의로 상가 건물까지 샀다는 것이었습니다.
동창들은 처음에 만석의 이름이 나오자 서로 눈치를 보았습니다. 알고 보니 만석에게 돈을 빌려주고 떼인 동창이 병철 씨 말고도 두 명이나 더 있었습니다. 다들 창피해서 말을 못 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만석이가 너한테 돈 빌린 거 아직 안 갚았어? 걔 요즘 잘나가던데.” 한 친구의 말에 병철 씨는 소주잔을 내려놓았습니다. 형편이 어려워서 못 갚은 것이 아니라, 갚을 마음이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날 밤 병철 씨는 장롱 깊숙이 넣어 둔 서류 봉투를 꺼냈습니다. 누렇게 바랜 차용증 한 장이 그대로 들어 있었습니다. 갚기로 한 날짜를 손가락으로 짚어 보니 아직 10년이 다 지나지 않았습니다.

병철 씨는 다음 날 대한법률구조공단 상담 창구를 찾았습니다. 상담원은 차용증을 꼼꼼히 살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갚기로 한 날부터 10년이 지나지 않았으니 아직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서둘러 지급명령을 신청하시는 게 좋겠어요.”
병철 씨는 그 자리에서 서류를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만석에게 짧은 문자 한 통을 보냈습니다.
[만석아, 500만 원은 빌려줄 수 없다. 대신 10년 전 빌려 간 3천만 원 이야기를 하자. 차용증은 아직 내가 가지고 있다. 법원에 지급명령을 신청했으니 서류가 갈 거다.]
문자를 보내자마자 만석에게서 전화가 빗발쳤습니다. “야, 우리 사이에 법원이 뭐냐. 친구끼리 너무하는 거 아니냐.”
처음에는 사정하는 목소리였다가, 나중에는 화를 내는 목소리로 바뀌었습니다. “너 그렇게 안 봤는데, 고작 돈 때문에 친구를 법원에 세우냐.” 병철 씨는 그 말에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습니다. 고작 돈 때문에 친구를 버린 사람이 누구인지, 이제는 분명히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병철 씨는 숨을 고르고 차분하게 대답했습니다.
“너무한 건 내가 아니다, 만석아. 10년 동안 연락 한 번 없다가 또 돈 빌려 달라고 전화한 건 너다. 나는 친구를 잃은 지 오래다. 이제 돈이라도 찾아야겠다.”

법원에서 지급명령이 송달되자 만석은 더 버티지 못했습니다. 상가 건물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곤란해질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한 달 뒤, 만석은 원금 3천만 원을 세 번에 나누어 갚겠다는 확약서를 보내왔고, 첫 번째 천만 원이 병철 씨 통장에 들어왔습니다.
나머지 두 동창도 병철 씨의 이야기를 듣고 용기를 냈습니다. 차용증은 없었지만 계좌 이체 기록이 남아 있었기에, 그들 역시 만석에게 돈을 돌려 달라는 내용증명을 보냈습니다. 10년 동안 각자 혼자 삼켜 온 억울함이 비로소 한목소리가 되었습니다.
통장에 찍힌 숫자를 본 아내 미숙 씨는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웃었습니다. “여보, 10년 만에 당신 어깨가 펴진 것 같네요.” 병철 씨는 쑥스럽게 웃었습니다. “그때 당신 말 들을 걸 그랬어. 그래도 차용증 쓰라고 한 건 당신 덕이야.”
그날 저녁, 병철 씨는 아내의 손을 잡고 동네 순댓국집에 갔습니다. 뜨끈한 순댓국 두 그릇에 막걸리 한 병. 10년 동안 마음 한구석에 얹혀 있던 체기가 그 국물 한 숟가락에 쑥 내려가는 것 같았습니다.

박완서 작가의 단편 제목 『자전거 도둑』처럼, 사람은 작은 이익 앞에서 양심을 슬그머니 내려놓기도 합니다. 그러나 끝까지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만이 떳떳하게 고개를 들고 살 수 있습니다. 빌린 돈을 갚지 않고 모른 척한 만석보다, 차용증 한 장을 지켜 온 병철 씨의 10년이 훨씬 당당했습니다.
친구 사이의 돈 거래는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빌려줘야 한다면, 반드시 기록을 남겨야 합니다. 정이 상할까 봐 망설인 한 장의 종이가, 훗날 내 노후와 자존심을 지켜 주는 마지막 버팀목이 됩니다.
얼마 전 병철 씨 부부는 마지막 돈이 들어온 날 월미도를 찾았습니다.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고, 저 멀리 붉은 해가 서해 수평선 너머로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방파제에 나란히 앉아 해가 다 질 때까지 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출처 : ‘자전거 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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