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식이 결혼해 제 집을 마련하는 날, 부모는 내 집을 산 것보다 더 기뻐합니다. 평생 허리띠를 졸라매 모은 돈을 아낌없이 내놓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돈이 자식의 마음까지 붙잡아 두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많은 부모가 너무 늦게 깨닫습니다.
대전 서구에 사는 정영자 씨는 올해 예순여섯, 남편 김태수 씨는 예순아홉입니다. 두 사람은 같은 구청에서 30년 넘게 공무원으로 일하다 나란히 정년퇴직을 했습니다. 월급은 많지 않았지만 아끼고 또 아껴 외아들 준호를 키웠습니다.
영자 씨는 점심 도시락을 싸 다니며 식대를 모았고, 태수 씨는 20년 동안 같은 구두를 밑창만 갈아 신었습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준호를 서울의 대학에 보냈고, 준호는 졸업 후 판교의 IT 회사에 취직했습니다. 부부에게 준호는 인생의 자랑이었습니다.
준호는 어려서부터 착하고 순한 아이였습니다. 초등학교 때 받은 상장은 거실 벽에 빼곡히 걸렸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 대신 쌀을 씻어 밥을 앉혀 놓던 아이였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구청 김 계장네 아들은 효자 될 거다”라며 입을 모았습니다.

6년 전, 준호가 결혼을 하겠다며 서울 아가씨 지은이를 데려왔습니다. 지은이의 부모는 서울 강남에서 작은 병원을 운영하는 집안이었습니다. 상견례 자리에서 사돈댁은 신혼집은 서울에 있어야 한다고 은근히 못을 박았습니다.
준호는 부모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엄마, 아빠, 저희가 어떻게든 대출 더 받아 볼게요.” 그 모습이 짠해서 영자 씨는 아들 등을 두드리며 “걱정 마라, 방법이 있겠지”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서울 아파트값은 대전 부부가 감당하기에 너무 높았습니다. 준호가 모아 둔 돈과 대출을 합쳐도 한참 모자랐습니다. 그날 밤 태수 씨는 아내와 마주 앉아 오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여보, 우리 노후 자금에서 2억을 보태 주자. 사돈댁 앞에서 우리 아들 기죽게 할 수는 없잖아.”
영자 씨는 잠시 망설였습니다. 2억은 두 사람이 퇴직금과 적금을 합쳐 모은 노후 자금의 절반이 넘는 돈이었습니다. 그래도 아들의 얼굴을 떠올리자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그래요. 우리야 연금으로 살면 되지요.”

준호는 그 돈으로 서울 마포에 아파트를 샀습니다. 집들이 날 부부는 대전에서 KTX를 타고 올라가 아들 집 거실에 섰습니다. 창밖으로 한강이 내려다보였습니다. 영자 씨는 남편의 손을 꼭 잡고 속삭였습니다. “여보, 우리가 잘한 거지요?”
그날 사돈댁도 집들이에 와 있었습니다. 사돈어른은 거실을 둘러보더니 “그래도 서울 한복판에 이 정도면 괜찮네요”라고 말했습니다. 2억이라는 돈이 어디서 왔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도 대전 부부에게 따로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부부는 아들이 기죽지 않은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결혼 첫해 추석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준호가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이번 추석엔 처가에 먼저 다녀올게요. 장인어른이 올해 칠순이셔서요.”
부부는 서운했지만 이해했습니다. 사돈댁 칠순이라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다음 설에도, 또 그다음 추석에도 준호는 처가에 간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매번 달랐습니다. 처제가 출산을 해서, 장모님이 수술을 하셔서, 처가 식구들이 해외여행을 가자고 해서.
영자 씨는 명절마다 차례상을 혼자 차렸습니다. 아들 내외가 오면 먹이려고 만든 갈비와 잡채는 결국 냉동실로 들어갔고, 부부는 텅 빈 거실에서 텔레비전 명절 특집 방송을 틀어 놓고 조용히 밥을 먹었습니다. 이웃집에서 손주들 웃음소리가 담을 넘어올 때면 영자 씨는 괜히 창문을 닫았습니다.

3년째 되던 해, 손녀 하은이가 태어났습니다. 영자 씨는 손녀가 보고 싶어 몇 번이나 서울에 가겠다고 했지만, 준호는 그때마다 “지은이가 아직 몸조리 중이라서요”, “요즘 장모님이 애를 봐주고 계셔서 집이 좀 복잡해요”라며 다음으로 미뤘습니다.
손녀의 돌잔치 사진은 사돈댁 가족 단체 사진으로 처음 보았습니다. 사돈 부부가 손녀를 안고 환하게 웃고 있었고, 그 사진 속에 대전 할머니, 할아버지의 자리는 없었습니다. 돌잔치에 초대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영자 씨는 그날 처음 알았습니다.
태수 씨는 그날 저녁 밥상을 물리고 베란다에 나가 한참 동안 담배를 피웠습니다. 끊은 지 15년 된 담배였습니다. 영자 씨는 남편의 굽은 등을 보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며칠 뒤 영자 씨는 용기를 내어 며느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얘야, 하은이 돌잔치 했다며. 우리도 불러 주지 그랬니.” 지은이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대답했습니다. “어머님, 저희 친정에서 다 준비하셔서요. 대전까지 오시기 힘드실 것 같아서 말씀 못 드렸어요.” 전화를 끊고 영자 씨는 한참 동안 수화기를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여보, 우리가 2억을 보태 준 게 사돈댁 손녀 키우라고 준 돈이었나 보오.” 남편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그리고 올해 설, 결정적인 일이 일어났습니다. 영자 씨는 설 한 달 전부터 아들에게 이번만큼은 꼭 오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태수 씨가 지난가을 협심증으로 스텐트 시술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몸도 안 좋으시니 이번엔 꼭 와라. 하은이 얼굴도 좀 보자.”
준호는 “알았어요, 엄마. 이번엔 꼭 갈게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영자 씨는 며칠 동안 시장을 돌며 손녀가 좋아할 만한 과자와 옷을 사고, 아들이 좋아하는 갈비찜과 식혜를 준비했습니다.
설날 아침, 상을 다 차려 놓고 기다리던 부부에게 준호의 문자 한 통이 도착했습니다.
[엄마, 죄송해요. 장인어른이 갑자기 가족끼리 제주도 가자고 하셔서요. 비행기표를 벌써 끊으셨대요. 다음에 꼭 갈게요.]

영자 씨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식어 가는 갈비찜을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눈물이 날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눈물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마음 한가운데가 텅 비어 버린 것 같았습니다.
태수 씨는 아무 말 없이 상 앞에 앉아 식은 갈비찜 한 점을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수저를 내려놓으며 말했습니다. “여보, 이제 그만 기다립시다. 우리가 기다리는 동안 저 녀석은 한 번도 우리를 기다린 적이 없소.”
그날 오후, 태수 씨가 서랍에서 서류 하나를 꺼냈습니다. 몇 해 전 부부가 만들어 둔 노후 계획표였습니다. 거기에는 남은 노후 자금으로 손녀 교육비 통장을 만들어 주고, 나중에 대전 아파트도 아들에게 물려준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여보, 이 계획은 오늘부로 다시 짭시다.” 태수 씨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단호했습니다. “우리가 주는 것만 알고 받을 줄은 몰랐소. 이제는 우리 두 사람을 위해 삽시다.”
부부는 그날 밤 늦게까지 마주 앉아 새로운 계획을 세웠습니다. 손녀 교육비로 모아 두려던 돈으로는 두 사람이 평생 미뤄 온 여행을 다니기로 했습니다. 대전 아파트는 나중에 주택연금으로 돌려 생활비로 쓰고, 남는 것은 부부가 다니는 복지관과 모교 장학회에 기부하기로 했습니다.
다음 날 부부는 은행에 들러 손녀 이름으로 만들어 두었던 적금을 해지했습니다. 창구 직원이 “만기가 얼마 안 남았는데 아깝지 않으세요?”라고 묻자, 태수 씨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아깝지 않소. 이 돈이 진짜 주인을 찾아가는 것뿐이오.”

며칠 뒤 제주도에서 돌아온 준호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엄마, 설에 못 가서 죄송해요. 다음 달에 하은이 데리고 내려갈게요.”
영자 씨는 차분하게 말했습니다. “준호야, 오지 않아도 된다. 그동안 엄마 아빠가 너무 많은 걸 바랐나 보다. 이제는 우리도 우리 인생을 살기로 했다. 너도 네 가정 잘 꾸리면서 살아라.”
준호는 당황한 듯했습니다. “엄마, 왜 그래요. 서운하셨으면 말씀을 하시지.”
“말을 안 했겠니. 6년 동안 명절마다 했다. 네가 듣지 않았을 뿐이지.” 영자 씨는 숨을 고르고 마지막 말을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아빠 엄마 노후는 우리가 알아서 하마. 대신 앞으로 우리한테 더 기대할 것은 없다. 집 대출이든 하은이 학비든, 이제는 네 힘으로 해라.”

그로부터 석 달 뒤, 준호가 연락도 없이 대전 집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손에는 과일 바구니가 들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준호가 찾아온 진짜 이유가 드러났습니다. 회사 동료와 함께 창업을 준비하는데 대전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을 수 없겠냐는 것이었습니다.
태수 씨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습니다. “준호야, 6년 만에 과일 바구니 들고 온 이유가 그거라면 그냥 가거라. 이 집은 아빠 엄마가 마지막까지 살 집이다. 너한테 더 줄 것도, 담보로 내줄 것도 없다.”
준호는 얼굴이 붉어진 채 한참을 앉아 있다가 말없이 일어섰습니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영자 씨는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오랫동안 무겁게 짊어지고 있던 짐 하나를 내려놓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부부는 둘이서 떡국을 끓였습니다. 설날에 먹지 못하고 냉동실에 넣어 두었던 가래떡이었습니다. 영자 씨가 썬 떡에 태수 씨가 계란 지단을 올렸습니다. 소박한 떡국 두 그릇이었지만 그 어느 해 설날 상보다 따뜻했습니다.
“여보, 다음 달엔 남해 가 봅시다. 신혼여행 때 가 보고 못 갔잖아요.” 영자 씨의 말에 태수 씨가 웃었습니다. “그럽시다. 이번엔 제일 좋은 방으로 잡읍시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제목 『리어왕』 속 늙은 왕은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나눠 주고 결국 비바람 속으로 쫓겨났습니다. 자식에게 다 주어야 사랑받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마지막까지 자기 몫을 지킬 때, 자식도 비로소 부모를 존중하는 법을 배웁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과 자식에게 끌려다니는 것은 다릅니다. 주는 만큼 돌아오지 않는다고 원망하기보다, 더 주기 전에 멈추는 용기가 노후를 지켜 줍니다. 그리고 그 단호함이 때로는 자식을 철들게 하는 마지막 가르침이 되기도 합니다.
올봄, 부부는 대청호 둘레길을 함께 걸었습니다. 잔잔한 호수 위로 봄 햇살이 부서지고, 물가의 벚나무가 꽃잎을 흩날리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벤치에 앉아 보온병에 담아 온 보리차를 나누어 마시며, 오래도록 호수를 바라보았습니다.
출처 : ‘리어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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