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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할머니 병원비 몰래 내드렸는데..” 장례식장에서 그 집 아들이 무릎을 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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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멀리 사는 친척보다 가까이 사는 이웃이 더 낫다는 뜻이지요. 나이가 들어 혼자 사는 날이 길어질수록, 담장 너머 이웃의 존재는 그 어떤 가족보다 큰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광주 양림동의 오래된 주택가에 사는 서말순 씨는 올해 일흔셋입니다. 40년 동안 대인시장에서 떡집을 하다가 5년 전 문을 닫았습니다. 남편은 15년 전 먼저 떠났고, 외동딸은 결혼해 대구에 살고 있습니다. 말순 씨는 작은 마당이 딸린 단층집에서 혼자 지내고 있습니다.

말순 씨의 떡집은 동네에서 ‘말순이 떡집’으로 불렸습니다. 새벽 세 시면 불을 켜고 쌀을 불려 시루에 떡을 쪘습니다. 돌잔치 떡, 이삿날 시루떡, 제사 떡까지 동네 대소사에 말순 씨의 떡이 빠진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40년을 보내고 나니 손목은 시큰거렸지만, 동네 사람들의 정은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말순 씨의 옆집에는 여든여섯 살 김옥분 할머니가 살았습니다. 두 사람은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30년 넘게 이웃으로 지냈습니다. 말순 씨가 떡을 찌는 날이면 옥분 할머니 몫을 따로 담아 담장 너머로 건넸고, 옥분 할머니는 마당에서 키운 상추와 고추를 한 소쿠리씩 넘겨주었습니다.

남편을 먼저 보내고 혼자가 되었을 때, 가장 먼저 대문을 두드린 사람도 옥분 할머니였습니다. 할머니는 말없이 들어와 부엌에 미역국을 끓여 놓고 갔습니다. “밥은 먹어야 산다잉.” 그 한마디에 말순 씨는 장례 내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날 이후 두 사람은 이웃을 넘어 서로의 하루를 챙기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옥분 할머니에게는 아들 하나가 있었습니다. 동네 사람들 말로는 오래전에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자리를 잡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말순 씨는 그 아들이 고향에 오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명절이면 동네 집집마다 자식들 차가 골목을 메웠지만, 옥분 할머니 집 앞은 늘 조용했습니다. 할머니는 마루에 홀로 앉아 골목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그 뒷모습을 볼 때마다 말순 씨는 가슴 한쪽이 시렸습니다.

“할머니, 아드님은 연락 자주 해요?” 언젠가 말순 씨가 조심스럽게 묻자 옥분 할머니는 웃기만 했습니다. “바빠서 그렇제. 미국은 멀잖여.” 그 웃음이 너무 쓸쓸해서 말순 씨는 다시는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할머니는 우체부가 올 때마다 대문 앞까지 나가 기다렸습니다. 가끔 미국 우표가 붙은 편지가 오는 날이면 할머니는 하루 종일 그 편지를 품에 안고 다녔습니다. 말순 씨는 그 모습을 보며, 그래도 아들이 아주 연락을 끊은 것은 아니구나 하고 조금 안심했습니다.

3년 전 겨울, 옥분 할머니가 마당에서 넘어져 고관절이 부러졌습니다. 신음 소리를 듣고 달려간 말순 씨가 119를 불렀고, 할머니는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은 잘 끝났지만 문제는 병원비였습니다. 할머니는 기초연금과 얼마 안 되는 저축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원무과 앞에서 영수증을 받아 든 할머니의 손이 덜덜 떨렸습니다. 수술비와 입원비를 합쳐 400만 원이 넘게 나왔습니다.

“아드님한테 연락하셔야지요.” 말순 씨의 말에 할머니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 애한테 부담 주기 싫어. 내가 어떻게든 해 볼라네.”

그날 밤 말순 씨는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떡집을 접으며 모아 둔 노후 자금이 떠올랐습니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옥분 할머니의 병원비 정도는 낼 수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말순 씨는 할머니 몰래 원무과를 찾아가 병원비를 모두 계산했습니다. 그리고 원무과 직원에게 부탁했습니다. “할머니께는 구청에서 지원금이 나왔다고 말씀해 주세요. 제가 냈다는 건 절대 비밀로 해 주시고요.”

퇴원하는 날, 옥분 할머니는 원무과 직원에게서 병원비가 해결되었다는 말을 듣고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아이고, 나라에서 이렇게까지 해 주는구먼. 세상 참 좋아졌네.” 말순 씨는 옆에서 할머니의 휠체어를 밀며 모른 척 웃었습니다.

그 뒤로도 말순 씨는 할머니의 정기 검진 날마다 병원에 동행했습니다. 약값이 나올 때면 슬쩍 먼저 계산했고, 겨울이면 할머니 집 보일러 기름을 몰래 채워 넣었습니다. 그렇게 3년 동안 말순 씨가 할머니를 위해 쓴 돈은 600만 원이 넘었습니다.

할머니는 병원에 다녀올 때마다 말순 씨의 손을 꼭 잡고 “자네 아니었으면 나는 벌써 갔을 것이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말순 씨는 “할머니, 그런 소리 마세요. 백 살까지 사셔야지요” 하며 손등을 토닥였습니다. 두 노인의 하루는 그렇게 서로를 기대며 흘러갔습니다.

딸은 그런 엄마를 걱정했습니다. “엄마, 엄마 노후 자금도 넉넉하지 않잖아요. 남의 집 할머니한테 그렇게까지 해야 돼요?” 말순 씨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남의 집 할머니가 아니다. 30년 동안 담 너머로 상추 넘겨준 사람이다. 내가 혼자 있을 때 제일 먼저 문 두드려 준 사람이고.”

올해 늦여름, 옥분 할머니는 잠을 자듯 조용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침에 할머니 집 대문이 열리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말순 씨가 가장 먼저 발견했습니다.

말순 씨는 동네 사람들과 함께 장례를 준비했습니다. 구청을 통해 미국에 있는 아들에게 연락이 닿았고, 아들은 다음 날 밤 비행기를 타고 오겠다고 했습니다. 말순 씨는 빈소를 지키며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살아 계실 때 한 번이라도 오지.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인가.’

빈소는 쓸쓸했습니다. 동네 노인들 몇 분과 경로당 사람들이 다녀갔을 뿐, 상주 자리는 이틀 동안 비어 있었습니다. 말순 씨는 그 빈자리를 지키며 영정 사진 속 할머니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할머니, 아드님 온대요. 조금만 기다려요.”

이틀째 되던 날 밤, 장례식장 입구에 지친 얼굴의 중년 남자가 나타났습니다. 옥분 할머니의 아들 정우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모습은 말순 씨가 상상했던 것과 달랐습니다.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빠져 있었고, 얼굴은 핏기 없이 수척했습니다. 한쪽 팔에는 링거를 꽂았던 자국이 선명했습니다.

정우는 어머니의 영정 앞에서 한참 동안 엎드려 울었습니다. 그리고 상주 자리에서 일어나 빈소를 지키던 말순 씨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무릎을 꿇었습니다.

“서말순 아주머니 맞으시지요. 어머니가 늘 편지에 쓰시던 분이요.”

말순 씨는 당황해서 정우를 일으키려 했지만, 정우는 고개를 숙인 채 말을 이었습니다. 그는 4년 전 미국에서 혈액암 진단을 받고 긴 항암 치료를 받아 왔다고 했습니다. 비행기를 탈 수 없는 몸이라 어머니를 보러 올 수 없었고, 어머니가 걱정할까 봐 아프다는 사실도 끝까지 숨겼다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고관절 수술을 받으셨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병원비를 보내 드리려고 했더니 어머니가 편지에 이렇게 쓰셨더군요. 옆집 말순이가 몰래 다 내 줬다고, 본인은 모르는 척하고 있으니 너도 모르는 척하라고요.”

말순 씨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습니다. 옥분 할머니는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구청 지원금이라는 거짓말도, 몰래 채워진 보일러 기름도, 할머니는 모두 알면서 말순 씨의 마음을 지켜 주려고 모른 척했던 것이었습니다.

정우는 가방에서 낡은 공책 한 권과 작은 주머니 하나를 꺼냈습니다. 공책에는 옥분 할머니의 삐뚤빼뚤한 글씨로 날짜와 금액이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말순이 병원비 대신 냄, 사백십만 원’, ‘말순이 보일러 기름 넣어 줌’, ‘말순이 약값 계산함’. 그리고 맨 마지막 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정우야, 이 은혜는 내가 갚을 수가 없다. 내가 가거든 꼭 네가 갚아라. 말순이는 내 딸이나 마찬가지다.]

주머니 안에는 할머니가 시집올 때 받았다는 금반지와 함께, 정우가 보낸 돈을 할머니가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 둔 통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정우는 그 통장과 반지를 말순 씨의 손에 쥐여 주었습니다. “어머니 뜻입니다. 받아 주세요. 제가 못 한 효도를 아주머니가 대신 해 주셨습니다.”

말순 씨는 정우의 손을 붙잡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30년 동안 담장 너머로 주고받은 것은 떡과 상추만이 아니었습니다. 서로의 외로움을 알아보고, 말없이 지켜 주던 마음이었습니다.

장례를 마친 다음 날, 말순 씨는 오랜만에 떡을 쪘습니다. 옥분 할머니가 생전에 가장 좋아하던 쑥절편이었습니다. 정우와 마주 앉아 따뜻한 절편을 나누어 먹으며, 말순 씨는 할머니가 담장 너머로 건네던 웃음을 떠올렸습니다. “어머니가 이 떡 참 좋아하셨지요.” 정우가 떡을 한 입 베어 물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브라질 작가 J. M. 바스콘셀로스의 소설 제목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속 어린 제제에게 뽀르뚜가 아저씨는 피를 나누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깊은 사랑을 준 사람이었습니다. 말순 씨와 옥분 할머니도 그랬습니다. 가족은 피로만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곁을 지켜 준 시간으로 맺어지기도 합니다.

남을 돕는 일은 생색을 내지 않을 때 더 큰 울림을 남깁니다. 그리고 그렇게 건넨 마음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언젠가 반드시 다른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오늘 내 곁의 이웃에게 건네는 작은 관심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삶을 버티게 하는 큰 힘이 될지도 모릅니다.

올가을 말순 씨는 옥분 할머니가 가꾸던 옆집 마당의 감나무 아래 앉아 있습니다. 정우가 미국으로 돌아가며 집을 동네 경로당 쉼터로 써 달라고 기증했기 때문입니다. 멀리 무등산 능선이 저녁노을에 붉게 물들고, 감나무 가지마다 주황빛 감이 등불처럼 매달려 있습니다.

출처 :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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