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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가는 손자에게 100만원 쥐여 줬는데..” 전역 날 손자가 내민 상자를 열고 울었다

책뭉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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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에게 손주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입니다. 손주가 넘어지면 내 무릎이 아프고, 손주가 웃으면 하루의 피로가 다 녹아내립니다. 그래서 손주가 먼 길을 떠날 때면 할머니는 쌈짓돈을 털어 손에 쥐여 줍니다. 그 돈이 손주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채 말입니다.

충북 제천에 사는 김옥자 씨는 올해 일흔여섯입니다. 남편을 15년 전에 먼저 보내고, 제천 의림지 근처 작은 단독주택에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제천 약초시장에서 한약재를 다듬는 일을 30년 넘게 했습니다. 지금은 손이 굳어 일을 그만두었지만, 마당 텃밭을 가꾸며 소일하고 있습니다.

약초시장 일은 겨울이 가장 고되었습니다. 언 손으로 칼을 쥐고 당귀며 황기 뿌리를 다듬다 보면 손끝이 갈라져 피가 맺혔습니다. 그래도 옥자 씨는 일당을 받는 날이면 꼭 손주들 줄 사탕 한 봉지를 사서 집에 들어갔습니다. 손주들이 그 사탕을 받고 웃는 얼굴이 옥자 씨에게는 가장 큰 보람이었습니다.

옥자 씨에게는 손자가 셋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큰손자 준서는 각별했습니다. 준서는 맞벌이하는 아들 내외 대신 옥자 씨가 초등학교 때까지 키운 손자였습니다. 아침마다 손을 잡고 학교에 데려다주고, 저녁이면 된장찌개를 끓여 먹였습니다.

준서는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를 유난히 좋아했습니다. 밤마다 할머니 팔을 베고 누워 “할머니, 호랑이 이야기 또 해 줘” 하고 졸랐습니다. 옥자 씨는 같은 이야기를 수십 번씩 해 주면서도 지겨운 줄 몰랐습니다. 준서가 잠든 얼굴을 바라보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옥자 씨는 몇 년 전부터 귀가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텔레비전 소리를 크게 키우는 정도였지만, 점점 사람들의 말을 알아듣기 어려워졌습니다. 전화가 와도 무슨 말인지 몰라 “응, 응” 하고 끊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병원에서는 보청기를 끼라고 했지만, 옥자 씨는 한사코 거절했습니다. 보청기 값이 수백만 원이라는 말에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늙은이가 다 들어서 뭐 하나. 이 정도면 살 만하다.” 그렇게 말하며 옥자 씨는 들리지 않는 세상에 조금씩 익숙해져 갔습니다.

가장 서운한 건 손자들과의 대화였습니다. 손자들이 명절에 와서 이야기를 해도 옥자 씨는 절반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몇 번을 되묻다 보면 손자들도 지쳐서 말을 멈추곤 했습니다. 옥자 씨는 그럴 때마다 웃으며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손자들이 돌아간 뒤 옥자 씨는 텅 빈 거실에 앉아 혼잣말을 하곤 했습니다. “무슨 말을 했는지 하나도 못 알아들었네.”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히 소리를 못 듣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조금씩 멀어지는 일이었습니다.

지난해 봄, 준서가 군대에 간다며 인사를 하러 왔습니다. 옥자 씨는 장롱 속 이불 밑에 꼭꼭 숨겨 두었던 돈 봉투를 꺼냈습니다. 약초시장에서 일하며 조금씩 모은 돈 100만 원이었습니다.

“준서야, 이거 가지고 가서 맛있는 거 사 먹어라. 군대 밥이 부실하다더라.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만 돌아와라.”

준서는 봉투를 받으며 할머니를 꼭 끌어안았습니다. 그리고 할머니 귀에 대고 크게 말했습니다. “할머니, 저 전역하면 할머니한테 선물 드릴게요. 꼭 기다리세요.” 옥자 씨는 그 말을 반쯤밖에 듣지 못했지만, 손자의 품이 따뜻해서 그저 웃었습니다.

준서가 입대한 뒤 옥자 씨는 손자 걱정에 잠을 설치는 날이 많았습니다. 준서는 휴가 때마다 할머니 집에 들렀지만, 대화는 늘 짧았습니다. 옥자 씨가 잘 듣지 못하니 준서는 주로 할머니 손을 잡고 텔레비전을 함께 보다 돌아갔습니다.

준서는 군대에서도 일주일에 한 번씩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옥자 씨는 수화기 너머 손자의 목소리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응, 그래, 밥 잘 먹어라.” 같은 대답만 되풀이하다 전화를 끊으면, 옥자 씨는 한참 동안 수화기를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휴가를 나올 때마다 준서가 이상한 질문을 했습니다. “할머니, 지금 이 소리 들려요?”, “할머니는 오른쪽 귀가 더 안 들려요, 왼쪽 귀가 더 안 들려요?” 옥자 씨는 손자가 왜 그런 걸 묻는지 몰라 그저 대충 대답하곤 했습니다.

한번은 준서가 휴가 나와서 할머니를 모시고 읍내 병원에 가자고 했습니다. “할머니, 귀 검사 한 번만 받아 보세요. 제가 다 알아봤어요.” 옥자 씨는 쓸데없이 돈 쓴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손자의 고집에 못 이겨 병원에 따라갔습니다. 검사를 마친 준서는 의사와 한참 동안 무언가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준서가 전역했습니다. 전역하던 날 저녁, 준서는 집에 가기도 전에 군복 차림 그대로 할머니 집 대문을 두드렸습니다. 손에는 작은 상자 하나가 들려 있었습니다.

“할머니, 약속한 선물이에요.”

옥자 씨는 영문도 모른 채 상자를 열었습니다. 그 안에는 작은 보청기 한 쌍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꼬깃꼬깃 접힌 편지 한 장과 낡은 봉투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1년 반 전 옥자 씨가 준서에게 쥐여 주었던 바로 그 돈 봉투였습니다.

준서는 할머니 귀에 보청기를 조심스럽게 끼워 주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천천히 말했습니다.

“할머니, 제 목소리 들려요?”

옥자 씨는 깜짝 놀라 손자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손자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습니다.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손자의 목소리가 마치 바로 옆에서 속삭이는 것처럼 선명하게 귀에 들어왔습니다.

“할머니가 주신 100만 원은 한 푼도 안 썼어요. 그 돈은 할머니 거니까 다시 드릴게요. 보청기는 제가 군대에서 받은 월급 모아서 산 거예요. 할머니 귀 검사한 병원에서 할머니한테 맞는 걸로 맞췄어요.”

옥자 씨는 손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습니다.

준서를 뒤따라 들어온 아들 내외도 그제야 사정을 알게 되었습니다. 준서가 군대에서 받은 월급을 거의 쓰지 않고 모았다는 것도, 휴가 때마다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온 것도 모두 처음 듣는 이야기였습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손을 잡으며 “어머님, 진작 저희가 해 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하고 울먹였습니다.

준서가 내민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할머니, 어릴 때 할머니가 매일 저한테 이야기해 주셨잖아요. 그런데 커서는 제가 할머니한테 이야기를 해도 할머니가 못 알아들으셔서, 저도 모르게 말을 줄이게 됐어요. 그게 너무 죄송했어요. 이제 할머니랑 옛날처럼 수다 떨고 싶어요. 할머니가 해 주시던 이야기, 이번엔 제가 해 드릴게요.]

그날 밤 옥자 씨와 준서는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군대에서 있었던 일, 앞으로 하고 싶은 일, 어릴 적 할머니와 함께했던 추억까지. 옥자 씨는 손자의 이야기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들으며 연신 웃었습니다. 몇 년 만에 처음으로, 할머니는 대화가 이렇게 즐거운 것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습니다.

이야기가 무르익자 옥자 씨는 부엌으로 가 된장찌개를 끓였습니다. 준서가 어릴 때 가장 좋아하던 바로 그 된장찌개였습니다. 보글보글 끓는 소리마저 또렷하게 들리자 옥자 씨는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얘야, 찌개 끓는 소리가 이렇게 컸었구나.”

준서는 된장찌개 한 숟가락을 떠먹더니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할머니, 이 맛이 군대에서 제일 생각났어요.” 소박한 밥상을 사이에 두고 할머니와 손자는 오래도록 웃음을 나누었습니다.

스웨덴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 제목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 달랬어요』 속 할머니와 손녀는 세상 누구보다 깊은 우정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할머니가 손주에게 쏟은 사랑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언젠가 손주의 손을 통해 다시 할머니에게 돌아옵니다.

손주에게 쥐여 준 돈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은 함께 보낸 시간과 나눈 이야기입니다. 오늘 손주에게 전화를 걸어 짧은 안부라도 나눠 보세요. 그리고 혹시 들리지 않는 불편을 참고 계신다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가족에게 먼저 이야기해 보세요. 들리는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따뜻합니다.

올가을 옥자 씨는 손자와 함께 의림지 둘레길을 걸었습니다. 호숫가 소나무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 물새가 날아오르는 소리, 그리고 곁에서 재잘거리는 손자의 목소리까지. 옥자 씨는 그 모든 소리를 하나하나 귀에 담으며 천천히 호숫가를 걸었습니다.

출처 :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 달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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