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 말 믿고 보험 5개 들었는데..” 3년 뒤 보험금 청구하다 알게 된 사실에 결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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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나 친척이 보험 일을 시작하면 하나쯤은 들어 주는 것이 도리라고 여기는 분들이 많습니다. 내 식구 실적을 올려 주고, 나도 든든한 보장을 받으니 서로 좋은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고 맡긴 서류 한 장이 훗날 큰 상처가 되어 돌아오기도 합니다.
경기 안양에 사는 박영순 씨는 올해 예순여섯입니다. 남편 김태식 씨와 함께 안양 중앙시장에서 30년 동안 철물점을 했고, 3년 전 가게를 정리했습니다. 부부는 두 아들을 출가시키고 연금과 모아 둔 돈으로 조용히 노후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영순 씨에게는 각별한 조카가 있었습니다. 언니의 외아들 민혁이었습니다. 언니가 맞벌이를 하던 시절, 영순 씨는 철물점 한쪽에 민혁이를 데려다 놓고 밥을 먹이고 숙제를 봐 주었습니다. 민혁이는 어릴 때부터 영순 씨를 “작은엄마”라고 부르며 따랐습니다.
민혁이가 대학에 붙었을 때 등록금이 모자라 언니가 발을 동동 구르자, 영순 씨는 철물점 계산대 서랍에 모아 둔 돈 300만 원을 선뜻 내주었습니다. “갚을 생각 말고 공부나 잘해라.” 민혁이는 그날 영순 씨 손을 잡고 “작은엄마, 나중에 꼭 효도할게요” 하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3년 전, 회사를 그만둔 민혁이가 보험설계사가 되었다며 인사를 왔습니다. 양복을 차려입은 조카가 대견해서 영순 씨는 고기를 구워 먹이며 등을 두드려 주었습니다. “이모, 처음이라 실적이 너무 없어요. 이모가 좀 도와주세요.”
영순 씨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민혁이는 노트북을 펼쳐 놓고 이것저것 설명했지만, 영순 씨 귀에는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이모부 나이엔 암이 제일 무서워요. 이거 하나면 암 진단받자마자 3,000만 원이 바로 나와요.”
그렇게 부부는 한자리에서 보험 다섯 개에 가입했습니다. 매달 빠져나가는 보험료가 48만 원이었습니다. 가게를 정리한 부부에게는 큰돈이었지만, 조카를 돕는다는 마음에 영순 씨는 아무 말 하지 않았습니다.

서류에 서명하는 날, 남편은 마침 시골에 내려가 있었습니다. 민혁이는 “이모부 서명은 제가 나중에 받을게요” 하며 서류를 챙겨 갔습니다. 영순 씨는 그 말을 의심 없이 믿었습니다.
다만 영순 씨에게는 오래된 버릇이 하나 있었습니다. 철물점을 하며 외상 장부를 꼼꼼히 적던 습관 그대로, 중요한 이야기는 문자로 다시 받아 두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밤에도 영순 씨는 민혁이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아까 말한 암 보험, 진단받으면 얼마 나온다고 했지?”
민혁이의 답장은 금방 왔습니다. “이모부 암 진단받으시면 3,000만 원 바로 나와요. 걱정 마세요, 이모!” 영순 씨는 그 문자를 지우지 않고 그대로 두었습니다.
그해 추석, 민혁이는 과일 상자를 들고 찾아와 넙죽 절을 했습니다. “이모 덕분에 이번 달 신인상 받았어요.” 영순 씨는 그 말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습니다. 조카가 자리를 잡는 데 작은 힘이 되었다는 생각에 보험료가 하나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3년 동안 영순 씨는 한 달도 빠짐없이 보험료를 냈습니다. 그사이 보험료를 내느라 부부는 외식을 줄였고, 남편은 낡은 점퍼를 몇 해째 입었습니다. 그래도 영순 씨는 “언젠가 쓸 데가 있겠지” 하며 스스로를 달랬습니다.
남편은 가끔 통장을 들여다보며 혀를 찼습니다. “여보, 보험이 다섯 개나 필요하오? 우리 형편에 너무 많은 것 같은데.” 영순 씨는 그럴 때마다 “민혁이가 다 알아서 해 줬어요. 아프면 다 나온대요” 하며 남편을 달랬습니다.
그런데 올봄, 남편이 건강검진에서 대장 용종이 발견되어 정밀 검사를 받았습니다. 결과는 초기 대장암이었습니다. 다행히 수술로 치료할 수 있는 단계였지만, 영순 씨는 병원 복도에서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습니다.
수술비와 입원비를 합치니 800만 원이 넘게 나왔습니다. 영순 씨는 그래도 한숨을 돌렸습니다. “암 진단비 3,000만 원이 나온다고 했으니, 병원비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영순 씨는 수술실 앞에서 그 말을 몇 번이고 되뇌었습니다.
수술을 마친 뒤 영순 씨는 보험금을 청구하러 보험사 창구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서류를 살펴보던 직원이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고객님, 남편분 계약은 저축성 보험이라 암 진단비 특약이 없습니다.”

영순 씨는 귀를 의심했습니다. 직원은 조심스럽게 한마디를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이 계약서의 피보험자 서명이 남편분 필체가 맞으신가요? 다른 서류 서명과 많이 달라서요.”
그 자리에서 영순 씨는 모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섯 개 가운데 두 개는 부부에게 필요 없는 상품이었고, 남편의 서명은 남편이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3년 동안 부은 1,700만 원 넘는 돈 가운데 정작 암 진단비로 받을 수 있는 돈은 한 푼도 없었습니다.
영순 씨는 민혁이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민혁이는 오히려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모, 제가 그때 다 설명드렸잖아요. 지금 해지하면 손해만 보세요. 그냥 두세요.”
그날 밤 영순 씨는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어릴 때 밥을 먹이고 업어 키우다시피 한 조카였습니다. 하지만 수술 자국이 채 아물지 않은 남편의 얼굴을 보며 영순 씨는 마음을 굳혔습니다. “정은 정이고, 잘못은 잘못이다.”

다음 날 영순 씨는 휴대전화 속 문자를 캡처하고, 보험 증권 다섯 장과 청약서 사본을 모두 챙겼습니다. 그리고 금융감독원 민원 상담 창구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상담 직원은 차분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설명과 다르게 판매했거나 본인이 서명하지 않은 계약이라면 계약 취소나 위법계약 해지를 요구하실 수 있습니다. 설명받은 내용을 문자로 남겨 두셨다면 중요한 증거가 됩니다.”
영순 씨는 보험사에 정식으로 민원을 넣었습니다. 대리 서명 사실과 문자 내용이 확인되자, 보험사는 남편 명의 계약을 무효로 처리하고 그동안 낸 보험료를 돌려주었습니다. 불필요하게 든 다른 보험도 손해 없이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보험사 직원은 서류를 정리하며 영순 씨에게 말했습니다. “어머님처럼 설명받은 내용을 문자로 남겨 두시는 분은 정말 드뭅니다. 이게 없었으면 다투기가 훨씬 어려웠을 거예요.” 영순 씨는 30년 철물점 장부 습관이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습니다.

소식을 들은 언니가 다급하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영순아, 민혁이 회사에서 징계받게 생겼어. 조카 앞길 막을 거니?” 영순 씨는 차분하게 대답했습니다. “언니, 앞길을 막은 건 내가 아니야. 이모부 몸에 칼 댄 날, 그 아이가 우리 앞길을 막았어.”
일주일 뒤, 민혁이가 영순 씨 집 앞에 찾아와 고개를 숙였습니다. “이모, 실적에 눈이 멀었어요. 죄송합니다.” 영순 씨는 조카의 어깨를 한 번 두드려 주고 말했습니다. “다른 집 어르신들한테는 절대 이러지 마라. 그게 이모가 바라는 전부다.”
남편은 수술 후 회복이 빨랐습니다. 돌려받은 보험료로 부부는 꼭 필요한 실손보험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는 병원비 통장에 넣어 두었습니다. 남편이 말했습니다. “당신이 그 문자 하나 남겨 둔 게 우리를 살렸네.”

보험료를 돌려받은 날, 부부는 안양 중앙시장 골목의 오래된 순댓국집에 마주 앉았습니다. 뽀얀 국물에 순대와 머릿고기를 듬뿍 넣은 순댓국 두 그릇이 김을 내며 놓였습니다. 남편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철물점 할 때 점심마다 먹던 그 맛이네.” 영순 씨는 남편 그릇에 순대를 하나 더 덜어 주었습니다.
옛이야기 『봉이 김선달』 속 김선달은 주인 없는 대동강 물을 자기 것인 양 팔아 욕심 많은 상인들의 돈을 챙깁니다. 그럴듯한 말솜씨에 속지 않으려면, 듣기 좋은 말보다 눈앞의 서류를 먼저 들여다봐야 합니다.

가까운 사람이 권하는 상품일수록 더 꼼꼼히 확인해야 합니다. 설명은 문자로 받아 두고, 서명은 반드시 내 손으로 하고, 가입한 뒤에도 증권을 한 번 더 읽어 보세요. 그 작은 확인이 가족 사이의 정까지 지켜 줍니다.
올가을 영순 씨는 남편과 함께 안양천 둑길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하천을 따라 은빛 억새가 바람에 일렁였고, 저녁 햇살이 물 위에 금빛으로 부서졌습니다. 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해가 질 때까지 둑길을 걸었습니다.
출처 : ‘봉이 김선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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