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30년 매달 10만원씩 몰래 보냈는데..” 장례식장에 찾아온 낯선 여인에게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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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로 40년을 살아도 끝내 다 알지 못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합니다. 함께 밥을 먹고 같은 이불을 덮어도, 말하지 못한 비밀 하나가 오랜 세월 마음에 그늘을 드리우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그늘의 정체는 때로 너무 늦게 밝혀집니다.
전남 목포에 사는 이정자 씨는 올해 일흔하나입니다. 남편 고재만 씨는 평생 고깃배 기관사로 일했습니다. 남편이 바다에 나가 있는 동안 정자 씨는 목포 동부시장에서 젓갈 장사를 하며 삼 남매를 키웠습니다.
남편은 말수가 적고 무뚝뚝한 사람이었습니다. 몇 달씩 배를 타고 돌아와도 “다녀왔소” 한마디가 전부였습니다. 그래도 월급날이면 꼬박꼬박 월급봉투를 정자 씨 손에 쥐여 주던 성실한 가장이었습니다.
결혼하던 해 남편은 정자 씨에게 반지 대신 작은 젓갈 단지 하나를 사 주었습니다. “당신 장사 밑천이오.” 정자 씨는 그 단지에 처음 담근 새우젓을 팔아 첫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말은 없어도 속은 깊은 사람이라고 정자 씨는 믿었습니다.

그런데 30년 전 어느 날, 정자 씨는 이상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남편이 따로 쓰던 통장에서 매달 10만 원씩 어딘가로 돈이 빠져나가고 있었습니다. 받는 사람의 이름은 처음 보는 여자 이름이었습니다.
그 시절 10만 원은 작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정자 씨는 그날 밤 남편에게 통장을 내밀었습니다. 남편은 한참 말이 없다가 짧게 대답했습니다. “갚아야 할 빚이 있소. 나중에 다 말해 주리다.”
정자 씨는 더 묻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마음 한구석에 의심이 자리 잡았습니다. 혹시 바깥에 다른 살림이 있는 것은 아닐까. 남편이 바다에서 돌아오지 않는 밤이면 그 이름이 떠올라 잠을 설쳤습니다.
어느 해 겨울에는 통장에 적힌 은행 지점을 찾아 광주까지 간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점 앞에 서자 발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이 더 무서웠던 정자 씨는 그대로 버스를 타고 목포로 돌아왔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돈은 한 달도 빠짐없이 나갔습니다. 정자 씨는 몇 번이나 다시 물으려다 그만두었습니다. 묻는 순간 오랜 결혼 생활이 무너질 것 같아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의심은 말 대신 한숨이 되어 쌓여 갔습니다.
자식들은 그런 엄마의 속을 알지 못했습니다. 명절이면 아버지와 엄마가 나란히 앉아 웃는 모습만 보았습니다. 정자 씨는 그 이름을 가슴속에 묻어 두고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았습니다.
남편은 일흔이 다 되어서야 배에서 내렸습니다. 은퇴한 뒤에도 그 10만 원은 여전히 매달 빠져나갔습니다. 정자 씨는 이제 그 돈에 대해 묻는 것조차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봄, 남편이 폐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발견했을 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습니다. 석 달 동안 병상을 지키던 정자 씨에게 남편은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끝내 입을 떼지 못한 채 눈을 감았습니다.
병실에서 남편은 자꾸 창밖 바다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어느 날은 정자 씨 손을 꼭 잡고 “당신한테 미안한 게 많소” 하고 중얼거렸습니다. 정자 씨는 그 미안함이 그 이름 때문일 거라 생각하며 끝내 묻지 않았습니다.
장례식장은 목포 시내의 작은 병원에 차려졌습니다. 둘째 날 저녁, 상복을 입은 정자 씨 앞에 낯선 여인이 들어섰습니다. 마흔 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인은 영정 앞에 엎드려 한참을 일어나지 못하고 흐느꼈습니다.
정자 씨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여인이 방명록에 쓴 이름이 바로 30년 동안 통장에 찍혀 있던 그 이름이었습니다. 김선희. 정자 씨는 떨리는 손으로 상복 자락을 움켜쥐었습니다.

조문을 마친 여인이 정자 씨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사모님,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김선희라고 합니다. 30년 동안 아저씨가 저를 키워 주셨어요.” 정자 씨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여인을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여인은 가방에서 낡은 편지 묶음을 꺼냈습니다. “30년 전, 저희 아버지가 아저씨 배에서 기관사로 일하셨어요. 그날 밤 원래 아저씨가 당직을 서는 날이었는데, 아저씨 막내아드님이 아파서 아버지가 대신 기관실에 들어가셨대요. 그날 기관실에 사고가 나서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정자 씨는 그날을 기억했습니다. 막내가 열이 펄펄 끓던 밤, 남편이 배에서 급히 내려 병원으로 달려왔던 날이었습니다. 그 뒤로 남편은 한동안 말을 잃었고, 술도 끊었습니다. 정자 씨는 그저 동료를 잃은 슬픔 때문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아저씨는 그날부터 매달 10만 원씩 보내 주셨어요. 제가 열네 살 때부터요. 명절마다 짧은 편지도 같이 보내 주셨어요. ‘선희야, 공부 열심히 해라. 네 아버지가 하늘에서 보고 계신다.’ 그 돈으로 저는 간호대학까지 졸업했어요.”
선희 씨는 지금 광주의 큰 병원에서 수간호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뒤늦게 듣고 달려왔지만, 이미 장례식장이었다고 했습니다. “아저씨가 사모님께는 절대 말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사모님까지 그 짐을 지게 할 수 없다고요.”
선희 씨는 휴대전화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보여 주었습니다. 간호대학 졸업식 날, 학사모를 쓴 선희 씨 옆에 남편이 어색하게 웃으며 서 있었습니다. 그날 남편은 정자 씨에게 수협에 볼일이 있다며 아침 일찍 집을 나섰던 기억이 났습니다.
정자 씨는 편지 묶음을 받아 들었습니다. 맨 아래에는 남편이 쓰다 만 편지 한 장이 끼어 있었습니다. [당신에게. 30년 동안 말 못 한 것이 있소. 의심받으면서도 말하지 못한 건, 내가 살아 있는 게 그 사람 덕이라는 게 부끄러워서였소.]

정자 씨는 편지를 가슴에 안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었습니다. 30년 동안 품었던 의심이 한순간에 눈물로 녹아내렸습니다. 남편이 그토록 무뚝뚝했던 이유도, 끝내 하지 못한 마지막 말도 그제야 알 것 같았습니다.
삼우제를 마친 날, 정자 씨는 선희 씨의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이제부터는 내가 네 엄마 노릇 할란다. 아저씨가 30년 한 일을 나도 이어서 해야 쓰겄다.” 선희 씨는 정자 씨 품에 안겨 아이처럼 울었습니다.
그 뒤로 선희 씨는 한 달에 한 번씩 목포에 내려옵니다. 정자 씨의 혈압을 재 주고, 약을 챙겨 주고, 함께 남편 산소에 다녀옵니다. 삼 남매도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선희 씨를 막내 누나처럼 반겼습니다.
큰아들은 아버지의 편지를 읽고 한참을 울다가 말했습니다. “엄마, 아버지가 왜 평생 술을 안 드셨는지 이제 알겠어요. 그날 이후로 단 한 잔도 안 드셨잖아요.” 정자 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남편의 영정 사진을 오래도록 쓰다듬었습니다.

삼우제를 마치고 돌아온 저녁, 정자 씨와 선희 씨는 동부시장 골목의 작은 백반집에 마주 앉았습니다. 우거지 된장국에 갈치구이 한 토막, 젓갈 몇 가지가 전부인 소박한 밥상이었습니다. 선희 씨가 말했습니다. “아저씨가 편지에 늘 쓰셨어요. 우리 집사람 젓갈이 목포에서 제일 맛있다고요.” 정자 씨는 웃으며 선희 씨 밥 위에 갈치 살을 발라 얹어 주었습니다.
오 헨리의 단편 『마지막 잎새』에서 늙은 화가 베어먼은 비바람 치는 밤 담벼락에 잎새 하나를 그려 넣어 죽어 가던 소녀를 살리고, 정작 자신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납니다. 가장 깊은 사랑은 때로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건네집니다.

오랫동안 품어 온 의심이 있다면, 그 뒤에 내가 모르는 사연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묻기 두려운 마음은 이해하지만, 서로의 마음을 너무 늦게 알게 되면 남는 것은 후회뿐입니다. 곁에 있을 때 한 번 더 물어보고, 한 번 더 믿어 주세요.
올가을 정자 씨는 선희 씨와 함께 유달산 둘레길에 올랐습니다. 다도해 섬들 사이로 붉은 노을이 번졌고, 목포 앞바다에는 고깃배들이 하나둘 불을 밝히며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정자 씨는 그 배들을 오래도록 바라보았습니다.
출처 : ‘마지막 잎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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