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 원룸 보증금 1000만원 내줬는데..” 4년 뒤 며느리가 챙긴 걸 알고 결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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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에게 무언가를 해 줄 수 있다는 것은 늙어서 누리는 큰 기쁨 가운데 하나입니다. 대가를 바라서가 아니라, 그 아이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로 지갑을 열게 됩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면, 서운함보다 먼저 분노가 치밉니다.
대구 북구에 사는 최옥순 씨는 올해 일흔셋입니다. 서문시장에서 40년 동안 포목점을 하며 남편과 함께 1남 1녀를 키웠습니다. 몇 해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로는 가게를 세놓고 그 월세와 연금으로 혼자 지내고 있습니다.
옥순 씨에게는 손자가 셋 있지만, 그중에서도 큰손자 민호는 특별했습니다. 어릴 때 맞벌이하던 아들 내외 대신 옥순 씨가 다섯 살까지 업어 키운 아이였습니다. 민호는 지금도 할머니 집에 오면 옥순 씨 무릎을 베고 눕곤 합니다.

4년 전 봄, 민호가 서울의 한 대학에 합격했습니다. 학교 기숙사에 떨어진 민호는 학교 앞 원룸을 구해야 했습니다. 아들은 회사 사정이 어렵다며 한숨만 쉬었고, 며느리는 “보증금 마련할 데가 없다”며 옥순 씨 눈치를 보았습니다.
옥순 씨는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포목점 월세를 모아 둔 통장에서 1,000만 원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직접 서울로 올라가 원룸 집주인을 만나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민호가 아직 어리니 임차인 이름은 옥순 씨로 하고, 보증금도 옥순 씨 통장에서 바로 보냈습니다.
계약하던 날 민호는 할머니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할머니, 제가 꼭 갚을게요.” 옥순 씨는 웃으며 손자의 등을 두드렸습니다. “갚긴 뭘 갚아. 공부나 열심히 해라. 나중에 이 돈은 네 결혼 밑천으로 쓰면 된다.”

그 뒤로 민호는 원룸에서 4년 동안 학교를 다녔습니다. 관리비나 수리 문제가 생기면 며느리가 집주인과 연락하며 원룸 관리를 맡겠다고 했습니다. 옥순 씨는 서울까지 오가기 힘든 몸이라 며느리에게 집주인 연락처를 넘겨주었습니다.
며느리는 명절마다 옥순 씨에게 민호 소식을 전했습니다. “민호가 원룸에서 잘 지내요. 제가 반찬도 자주 부쳐 주고 있어요.” 옥순 씨는 그 말이 고마워 며느리 손에 용돈을 쥐여 주곤 했습니다. 며느리는 손사래를 치면서도 봉투를 받아 갔습니다.
올봄 민호는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의 한 회사에 취직했습니다. 회사 기숙사에 들어가게 되면서 원룸 계약은 끝이 났습니다. 옥순 씨는 보증금을 민호 이름의 통장에 넣어 결혼 밑천으로 남겨 줄 생각에 마음이 들떴습니다.

그런데 계약이 끝나고 한 달이 지나도록 보증금 이야기가 없었습니다. 옥순 씨가 며느리에게 묻자 며느리는 “집주인이 아직 안 보내 줬다”고 했습니다. 이상하게 여긴 옥순 씨는 계약서에 적힌 번호로 집주인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습니다.
집주인은 의아하다는 듯 말했습니다. “할머니, 보증금은 계약 끝나는 날 바로 보내 드렸는데요. 며느님이 할머니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면서 며느님 계좌로 보내 달라고 하셔서요.” 옥순 씨는 수화기를 든 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더 기가 막힌 일은 그다음이었습니다. 그 주말 대구 할머니 집에 내려온 민호에게 옥순 씨가 슬며시 보증금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민호는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보증금은 엄마가 적금 깨서 마련해 주신 거라고 했는데요? 할머니가 내주신 거였어요?”

4년 동안 며느리는 손자에게 할머니의 도움을 자기 공으로 돌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계약이 끝나자 그 돈까지 조용히 자기 통장으로 챙긴 것이었습니다. 옥순 씨는 손자 앞에서 애써 웃었지만, 그날 밤 한숨도 자지 못했습니다.
옥순 씨는 아들에게 먼저 전화를 걸까 하다가 수화기를 내려놓았습니다. 아들 내외 사이에 금이 갈까 걱정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손자에게까지 거짓말을 해 온 며느리를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습니다.
옥순 씨는 서랍 깊숙이 넣어 둔 서류 봉투를 꺼냈습니다. 그 안에는 4년 전 원룸 계약서와 보증금을 보낸 통장 거래 내역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습니다. 포목점을 하며 40년 동안 장부와 영수증을 버리지 않던 습관 그대로였습니다.
다음 주 일요일, 옥순 씨는 아들 내외와 민호를 모두 집으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식탁 위에 계약서와 거래 내역을 나란히 펼쳐 놓았습니다. “이 계약서에 임차인이 누구로 되어 있는지 읽어 봐라.” 아들은 계약서를 들여다보다가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며느리는 얼굴이 붉어진 채 둘러댔습니다. “어머니, 민호 결혼할 때 보태려고 제가 맡아 둔 거예요.” 옥순 씨는 조용히 물었습니다. “그럼 그 통장 지금 여기서 보여 줘라.” 며느리는 끝내 통장을 꺼내지 못했습니다. 그 돈은 이미 며느리의 주식 손실을 메우는 데 쓰인 뒤였습니다.
옥순 씨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이 돈은 내 돈이고, 내가 민호한테 주기로 한 돈이다. 한 달 안에 1,000만 원을 민호 이름 통장으로 넣어라. 안 그러면 계약서 들고 법대로 하겠다.” 아들은 고개를 푹 숙였고, 며느리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옥순 씨는 한마디를 더 보탰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손주들한테 줄 돈은 내가 직접 손주들 손에 쥐여 줄 거다. 중간에서 누가 맡아 주는 일은 없다.” 민호는 할머니의 손을 꼭 잡은 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들은 그날 밤 아내와 크게 다투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이 채 지나기 전에 적금을 깨서 1,000만 원을 민호 통장에 넣었습니다. 며느리는 옥순 씨를 찾아와 “어머니, 제가 욕심이 과했어요” 하며 처음으로 진심 어린 사과를 했습니다.
옥순 씨는 며느리의 사과를 받아 주었습니다. 다만 다음 명절에 며느리가 내민 용돈 봉투는 그대로 돌려주었습니다. “이건 네가 갖고 있다가 민호 동생들 학원비에 보태라.” 며느리는 그 봉투를 받아 들고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민호는 통장에 들어온 1,000만 원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청약 통장과 적금으로 나누어 넣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에게 통장 사본을 보내며 문자를 남겼습니다. [할머니, 이 돈 꼭 불려서 할머니 모시고 여행 갈게요.] 옥순 씨는 그 문자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습니다.

지난달 민호가 입사 후 첫 휴가를 받아 대구에 내려왔습니다. 옥순 씨는 손자를 데리고 서문시장 골목의 오래된 국밥집에 갔습니다. 따로국밥 두 그릇에 깍두기와 부추김치가 전부인 소박한 밥상이었습니다. 민호가 국밥을 크게 한 숟가락 뜨며 말했습니다. “할머니, 서울에서 먹던 것보다 백 배 맛있어요.” 옥순 씨는 웃으며 손자 그릇에 고기를 덜어 주었습니다.
몰리에르의 『수전노』에서 아르파공은 돈 상자에 집착하다가 자식들의 마음도, 가족의 믿음도 모두 잃고 맙니다. 남의 몫까지 내 것으로 움켜쥐려는 욕심은 결국 가장 소중한 사람들을 떠나보내게 만듭니다.

가족 사이의 돈일수록 흐름이 분명해야 합니다. 큰돈을 건넬 때는 누구에게, 어떤 뜻으로 주는지 분명히 하고 계약서나 거래 내역 같은 기록을 꼭 남겨 두세요. 그 기록이 내 마음을 지키고, 가족 사이의 오해까지 막아 줍니다.
올가을 옥순 씨는 민호와 함께 팔공산 동화사 길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산자락을 따라 늘어선 나무마다 단풍이 붉게 타올랐고, 산사의 처마 끝으로 저녁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았습니다. 옥순 씨는 손자의 팔짱을 끼고 해가 질 때까지 산길을 걸었습니다.
출처 : ‘수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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