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아프다길래 죽을 끓여 찾아갔는데..” 아파트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보고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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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으면 엄마는 만사를 제쳐 두고 달려가게 됩니다. 결혼한 딸이라도 엄마 눈에는 여전히 돌봐야 할 아이로 보이기 때문입니다.그런데 딸의 집 앞에서 뜻밖의 사람을 마주친다면 어떨까요? 오늘은 아픈 딸을 위해 죽을 끓여 찾아갔던 한 엄마가 아파트 앞에서 마주친 사람과 나눈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서먹했던 사돈 사이
경기도 안양에 사는 최미영 씨는 올해 예순셋입니다. 그녀는 30년 동안 동네 어린이집 원장으로 일하다 은퇴했습니다. 외동딸 지수 씨는 5년 전 결혼해 서울 금천구에서 남편과 네 살 아들을 키우며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미영 씨는 사돈댁과 사이가 그리 가깝지 않았습니다. 결혼 준비 과정에서 예단 문제로 서운한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부인 박옥자 씨가 예단이 부족하다는 말을 했다는 이야기를 딸에게 전해 들은 뒤로 미영 씨는 사돈과 마주치는 것이 불편했습니다.그 뒤로 두 사돈은 명절이나 손주 생일에 잠깐 얼굴을 보는 정도였습니다. 인사는 나누었지만 서로 말을 아꼈습니다. 미영 씨는 사부인이 자기 딸을 어떻게 대하는지 늘 신경이 쓰였습니다.딸은 엄마와 시어머니 사이에서 늘 조심스러워했습니다. “엄마, 어머님도 좋은 분이야. 그때 일은 오해였어.” 하지만 미영 씨는 그 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그러던 올해 늦가을, 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목소리가 잔뜩 쉬어 있었습니다. “엄마, 나 독감 걸렸어. 열이 너무 나서 회사도 못 갔어. 그이는 출장 가고 애는 어린이집 보냈는데 너무 힘들어.”미영 씨는 딸이 시댁에 다녀올 때마다 “어머님이 뭐라고 하시던?” 하고 묻곤 했습니다. 딸은 그때마다 웃으며 별일 없었다고 대답했지만, 미영 씨는 딸이 혹시 시댁에서 서운한 일을 겪고도 참는 것은 아닌지 늘 마음이 쓰였습니다.

새벽에 끓인 전복죽
미영 씨는 딸의 전화를 받자마자 부엌으로 향했습니다. 냉동실에 아껴 두었던 전복을 꺼내 손질하고, 쌀을 불려 정성껏 전복죽을 끓였습니다. 딸이 어릴 때 아플 때마다 끓여 주던 죽이었습니다.죽을 보온 도시락에 담고, 딸이 좋아하는 동치미와 장조림도 챙겼습니다. 해열제와 쌍화탕까지 가방에 넣고 서둘러 집을 나섰습니다. 안양에서 금천구까지는 버스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였습니다.버스 안에서 미영 씨는 딸 생각에 마음이 조급했습니다. 혼자 열에 시달리고 있을 딸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습니다. 한편으로는 사위가 출장 중이라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돈댁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습니다.딸의 아파트 단지에 도착한 미영 씨는 서둘러 딸이 사는 동으로 걸어갔습니다. 공동현관 앞에 다다랐을 때, 그녀는 그 자리에 멈춰 섰습니다.현관 앞에 낯익은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보온 도시락 가방을 양손에 든 채 초조하게 비밀번호를 누르고 있는 사람, 바로 사부인 박옥자 씨였습니다.

현관 앞에서 마주친 두 엄마
두 사람은 동시에 서로를 발견하고 잠시 말을 잃었습니다. 사부인의 손에도 보온 도시락이 들려 있었습니다. 미영 씨는 순간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인사했습니다. “사부인, 여기서 뵙네요.”사부인도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습니다. “사돈, 지수가 아프다고 해서요. 성민이가 출장 가서 걱정이 돼서 와 봤어요.” 사부인은 들고 있던 가방을 조금 들어 보였습니다. “전복죽 좀 끓여 왔어요.”미영 씨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자신의 가방에도 똑같은 전복죽이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부인, 저도 전복죽 끓여 왔는데요.” 그 말에 사부인도 웃음을 터뜨렸습니다.두 사람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사부인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습니다. “사돈, 사실 지수가 결혼하고 나서 저한테 참 잘해요. 시어미 생일도 꼬박꼬박 챙기고요. 사돈이 딸을 참 잘 키우셨어요.”미영 씨는 그 말에 마음 한쪽이 찡해졌습니다. 5년 동안 사부인이 딸을 못마땅하게 여길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사부인은 오히려 며느리를 칭찬하고 있었습니다.엘리베이터가 딸의 층에 닿을 때까지 두 사람은 말없이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까와는 공기가 달랐습니다. 서로의 손에 들린 똑같은 보온 도시락을 바라보며 두 사람은 같은 마음으로 이곳에 왔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딸의 집에서 나눈 진심
현관문을 연 딸은 두 엄마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열 때문에 붉어진 얼굴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결국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엄마, 어머님… 두 분이 같이 오셨어요?”두 엄마는 딸을 침대에 눕히고 함께 간호했습니다. 한 사람은 이마에 물수건을 올려 주고, 한 사람은 죽을 데웠습니다. 딸은 결국 두 엄마가 끓여 온 전복죽을 반반씩 나눠 먹었습니다. “둘 다 맛있어요. 엄마 맛이랑 어머님 맛이 다 느껴져요.”딸이 잠든 뒤 두 사돈은 거실에 마주 앉아 차를 마셨습니다. 한참을 망설이던 사부인이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사돈, 결혼 준비할 때 예단 일로 서운하셨죠? 그때 제가 친척들 앞에서 괜한 말을 했어요. 그게 와전돼서 사돈 귀에 들어갔다는 걸 나중에 알았어요.”사부인은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 뒤로 사돈 얼굴을 볼 때마다 미안해서 말을 못 꺼냈어요. 오늘 이렇게 만난 김에 꼭 사과드리고 싶었어요.”미영 씨는 사부인의 손을 잡았습니다. “사부인, 저도 5년 동안 그 일을 마음에 담아 두고 있었어요. 그런데 오늘 보니 사부인이 우리 지수를 이렇게 아껴 주시는데 제가 괜히 오해했네요.”

두 엄마가 맺은 약속
그날 두 사돈은 해가 질 때까지 딸의 집에 머물렀습니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손자는 할머니 두 분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신이 나서 뛰어다녔습니다. 두 할머니는 나란히 앉아 손자에게 동화책을 읽어 주었습니다.돌아가는 길에 두 사람은 같은 버스 정류장까지 함께 걸었습니다. 사부인이 말했습니다. “사돈, 앞으로는 우리 둘이 연락하고 지내요. 지수 힘들 때 번갈아 가면서 도와주면 좋잖아요.”미영 씨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래요, 사부인. 지수가 맞벌이라 늘 마음이 쓰였는데 사부인이 계셔서 든든하네요.”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휴대폰 번호를 다시 저장하고 메신저 친구를 맺었습니다.그날 밤 딸에게서 문자가 왔습니다. “엄마, 오늘 정말 고마웠어. 어머님이랑 엄마가 같이 계시는 거 보고 아픈 것도 다 나은 것 같아. 5년 동안 두 분 사이에서 마음 졸였는데 이제 마음이 놓여.”미영 씨는 그 문자를 읽고 한참 동안 휴대폰을 가슴에 안고 있었습니다. 딸이 그동안 두 엄마 사이에서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을지 그제야 알 것 같았습니다.사부인은 버스에 오르기 전 미영 씨의 손을 한 번 더 꼭 잡았습니다. “사돈, 다음에는 우리 둘이 따로 밥 한번 먹어요. 지수 어릴 때 이야기도 듣고 싶어요.” 미영 씨는 그 말에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습니다.

반찬을 나누는 사돈
그 뒤로 두 사돈은 정말로 자주 연락하며 지냅니다. 딸이 야근하는 날이면 번갈아 가며 손자를 데리러 가고, 반찬을 만들면 서로 나눠 먹습니다. 사부인의 김치 솜씨와 미영 씨의 장조림 솜씨가 딸의 냉장고를 채웁니다.지난달에는 두 사람이 함께 딸의 집 근처 시장에 장을 보러 갔습니다. 시장 상인들은 두 사람을 친자매로 오해했습니다. “두 분이 어쩜 이렇게 닮으셨어요?” 두 사돈은 서로를 바라보며 깔깔 웃었습니다.사위도 장모와 어머니가 가까워진 것을 누구보다 반가워합니다. 명절이면 이제 양가 부모를 한자리에 모시고 식사를 합니다. 손자는 두 할머니 사이에 앉아 양쪽에서 반찬을 받아먹습니다.미영 씨는 요즘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사돈 사이가 서먹하면 결국 제일 힘든 건 자식이더라. 오해가 있으면 혼자 담아 두지 말고 한번 마주 앉아 봐. 나는 전복죽 덕분에 사돈을 얻었어.”그리고 그날 이후로 미영 씨는 전복죽을 끓일 때마다 꼭 두 통을 끓입니다. 한 통은 딸에게, 한 통은 사부인에게 보내기 위해서입니다.

사돈 사이의 작은 오해는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같은 자식을 아끼는 마음만큼은 두 엄마가 다르지 않습니다.혹시 마음에 담아 둔 사돈과의 서운함이 있다면, 오늘 먼저 안부 인사를 건네 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 한마디가 자식의 마음까지 편안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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