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식에게 큰돈을 보태 줄 때 부모는 늘 두 가지 마음을 함께 품습니다. 잘 살라는 응원과, 혹시나 하는 걱정입니다. 그 걱정을 잔소리로만 여기던 자식들도, 어느 날 그 잔소리 덕분에 살았다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옵니다.
경기 수원에 사는 박명숙 씨는 올해 예순일곱입니다. 20년 동안 동네 부동산 중개사무소에서 경리로 일했습니다. 계약서와 등기부를 매일 들여다보며 집 때문에 울고 웃는 사람들을 수없이 지켜보았습니다.
3년 전, 외아들 준수가 결혼을 앞두고 신혼집을 구했습니다. 수원 외곽의 신축 빌라였고, 전세금은 2억 원이었습니다. 아들 부부가 모은 돈으로는 절반밖에 되지 않아, 명숙 씨는 노후 자금에서 1억 원을 떼어 보태 주었습니다.

계약하는 날 명숙 씨는 직접 따라나섰습니다. 그리고 등기부를 떼어 집주인 이름과 대출이 얼마나 잡혀 있는지부터 꼼꼼히 살폈습니다. 계약서를 쓰고 나서는 아들에게 단단히 일렀습니다. “오늘 바로 전입신고하고 확정일자 받아라. 그리고 전세보증보험 꼭 들어라.”
아들은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엄마, 보증보험료만 해도 수십만 원이에요. 집주인도 점잖아 보이던데 굳이 들어야 해요?” 옆에 있던 중개인도 웃으며 거들었습니다. “요즘 신축 빌라는 다 괜찮습니다. 어머님이 너무 꼼꼼하시네요.”
며느리도 내심 서운한 눈치였습니다. 신혼살림 장만할 돈도 빠듯한데 보험료까지 내야 하느냐는 얼굴이었습니다. 명숙 씨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내 돈 1억이 들어간 집이다. 보험 안 들 거면 그 돈 돌려 다오.” 아들은 결국 투덜거리며 보증보험에 가입했습니다.

그 뒤로 아들 부부는 그 빌라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듬해에는 손녀가 태어났고, 명숙 씨는 일주일에 두 번씩 반찬을 싸 들고 아들 집을 오갔습니다. 집주인은 명절마다 과일 상자를 보내올 만큼 친절했고, 아들은 가끔 “엄마 괜히 걱정했잖아요” 하며 웃었습니다.
명숙 씨는 해마다 아들에게 등기부를 다시 떼어 보라고 일렀습니다. 아들은 “엄마는 정말 못 말린다”며 웃었지만, 명숙 씨는 지난해 등기부에 은행 대출이 새로 잡힌 것을 보고 마음 한구석이 내내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보증보험 증서를 다시 한번 꺼내 확인해 두었습니다.

그런데 올여름, 아들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엄마, 큰일 났어요. 집주인이 연락이 안 돼요. 오늘 법원에서 이 집이 경매에 넘어간다는 서류가 왔어요.” 명숙 씨는 들고 있던 국자를 내려놓고 곧장 아들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빌라 1층 현관에는 이미 세입자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습니다. 같은 건물 열두 가구가 모두 같은 서류를 받았습니다. 집주인은 빌라 여러 채를 사들이며 은행 대출을 잔뜩 받아 두고 해외로 잠적한 뒤였습니다. 몇몇 세입자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며느리는 손녀를 안은 채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습니다. “어머님, 저희 전세금 다 날리는 거예요?” 명숙 씨는 며느리의 등을 쓸어 주며 말했습니다. “울지 마라. 우리는 보증보험이 있다. 지금부터 순서대로 하나씩 하면 된다.”
명숙 씨는 그날 밤 아들 집 식탁에 앉아 서류를 펼쳤습니다. 계약서와 확정일자, 전입신고 기록, 보증보험 증서가 모두 제자리에 있었습니다. 명숙 씨는 중개사무소에서 일하던 시절 배운 대로 해야 할 일을 종이에 하나하나 적어 내려갔습니다.
다음 날 아침, 명숙 씨는 아들과 함께 보증기관을 찾아가 보증금 반환 절차를 상담했습니다. 담당자의 안내에 따라 법원에 임차권등기를 먼저 신청하고, 계약 만료일에 맞춰 보증금 반환 청구 서류를 차례로 냈습니다. 담당자는 “서류를 이렇게 빈틈없이 챙겨 오시는 분은 드물다”며 놀라워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건물 세입자 가운데 보증보험에 든 집은 명숙 씨네를 포함해 단 두 집뿐이었습니다. 나머지 열 가구는 경매로 넘어간 집에서 은행 대출이 먼저 빠져나가면 전세금을 거의 돌려받지 못할 처지였습니다. 명숙 씨는 그들의 눈물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명숙 씨는 세입자들을 빌라 주차장에 모아 놓고 말했습니다. “울고만 있으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 먼저 다 같이 경찰서에 고소장을 냅시다. 그리고 전세사기 피해 지원센터에 가서 받을 수 있는 지원부터 확인합시다.” 세입자들은 하나둘 고개를 들었습니다.
명숙 씨는 직접 고소장 초안을 정리하고, 세입자들의 계약서와 송금 내역을 모아 한 권의 파일로 묶었습니다. 그 파일을 들고 경찰서와 지원센터를 몇 번이나 오갔습니다. 3년 전 “어머님이 너무 꼼꼼하시다”며 웃던 중개인도 참고인으로 불려 가 고개를 숙여야 했습니다.
그사이 명숙 씨는 밤마다 세입자 단톡방에 그날그날 진행 상황을 올렸습니다. 어디에 어떤 서류를 내야 하는지, 지원센터 상담은 언제 받을 수 있는지 하나하나 정리해 알려 주었습니다. 세입자들은 어느새 명숙 씨를 “반장님”이라고 불렀습니다.

몇 달 뒤, 해외로 달아났던 집주인은 결국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피해 세입자들은 지원센터의 도움으로 긴급 주거 지원과 저금리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명숙 씨네 통장에는 보증기관에서 보낸 전세금 2억 원이 한 푼도 빠짐없이 들어왔습니다.
돈이 들어온 날, 아들은 어머니 앞에서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엄마, 그때 보험료 아깝다고 투덜거려서 죄송해요. 엄마 아니었으면 우리 세 식구 길바닥에 나앉을 뻔했어요.” 명숙 씨는 아들의 어깨를 두드렸습니다. “그래서 엄마 잔소리는 들어야 하는 거다.”
며느리는 명숙 씨의 손을 잡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어머님, 그때 서운해했던 제가 너무 부끄러워요. 이번에 새로 집 구할 때도 어머님이 꼭 같이 가 주세요.” 명숙 씨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들 부부는 그 돈으로 공공임대 아파트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이삿날, 같은 빌라의 세입자들이 떡 상자를 들고 명숙 씨를 찾아왔습니다. “반장님 아니었으면 우리는 지금도 주저앉아 울고만 있었을 거예요.” 명숙 씨는 그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 주며 끝까지 함께 힘내자고 말했습니다.

이사를 마친 주말, 명숙 씨는 아들 가족과 함께 새 아파트 식탁에 둘러앉았습니다. 며느리가 끓인 김치찌개 한 냄비에 계란말이 한 접시가 전부인 소박한 밥상이었습니다. 손녀가 숟가락을 들고 “할머니 최고!” 하고 외치자 식탁에 웃음이 터졌습니다. 명숙 씨는 며느리 그릇에 계란말이를 한 조각 더 얹어 주었습니다.
『아기 돼지 삼 형제』에서 짚과 나무로 서둘러 집을 지은 두 형은 늑대의 입김 한 번에 집을 잃지만, 시간과 품을 들여 벽돌집을 지은 막내는 끝까지 집을 지켜 냅니다. 귀찮고 번거로워 보이는 준비가 결국 가장 든든한 벽돌이 됩니다.

큰돈이 오가는 계약일수록 남의 말보다 서류를 믿어야 합니다. 등기부를 확인하고,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챙기고, 보증보험처럼 나를 지켜 줄 장치를 꼭 마련해 두세요. 오늘의 작은 번거로움이 내일의 큰 눈물을 막아 줍니다.
올가을 명숙 씨는 손녀의 손을 잡고 광교호수공원 둘레길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호숫가 나무마다 단풍이 곱게 물들었고, 잔잔한 물 위로 저녁 햇살이 금빛으로 반짝였습니다. 명숙 씨는 손녀와 함께 해가 질 때까지 호숫가 벤치에 앉아 있었습니다.
출처 : ‘아기 돼지 삼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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