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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커와 골대 사이, 승부차기의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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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토너먼트에서 가장 잔인한 장면은 승부차기다. 공은 골대에서 불과 11m 떨어져 있고, 키커는 골문 대부분을 볼 수 있다. 이론상 유리한 쪽도 골키퍼가 아니라 키커다. 그런데도 세계 최고의 선수조차 공을 허공으로 띄우거나 골키퍼 품에 차거나 골대를 맞힌다. 왜 그럴까.

승부차기는 단순한 기술 싸움이 아니다. 심리학부터 신경과학 등 다양한 분야가 얽힌 압박 실험에 가깝다. 실축의 핵심은 선수가 공을 못 차서가 아니다. 너무 잘 차야 한다고 느끼는 순간, 평소 잘만 움직이던 몸이 오히려 흔들리는데, 여기에 과학이 숨어있다.

이 분야에서 자주 언급되는 것은 노르웨이 스포츠과학자 게이르 조르데트 박사 연구팀이 2007년 발표한 조사 보고서 ‘축구 페널티킥: 스트레스, 기술, 피로가 슈팅에 주는 영향(Kicks from the penalty mark in soccer: The roles of stress, skill, and fatigue for kick outcomes)’이다.

연구팀은 1976년부터 2004년까지 월드컵과 UEFA 유럽선수권, 코파아메리카에서 치러진 총 41차례의 승부차기 총 409개 킥을 분석했다. 그 결과, 킥의 중요도가 높을수록 성공률이 떨어졌다. 선수의 기술 수준이나 피로는 성공 여부와 관련성이 상대적으로 약했다. 승부차기의 핵심 변수는 얼마나 잘 차는가가 아니라, 그 순간을 얼마나 중요하게 느끼는가였다.

조르데트 박사 연구팀은 이듬해 ‘승부차기에서 실패 회피 동기와 압박에 따른 수행 붕괴(Avoidance motivation and choking under pressure in soccer penalty shootouts)’를 발표했다. 월드컵과 유럽선수권, 챔피언스리그 승부차기 총 36차례, 359개 킥을 분석한 연구팀은 선수들이 실축을 피하려는 압박감 때문에 흔들릴 수 있다고 봤다. 특히 스타 선수일수록 압박감에 실축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해당 연구에서 회피 동기를 눈여겨볼 만하다. 페널티킥과 승부차기는 비슷하지만, 전자의 목표는 “골을 넣는다”인데 비해 후자의 경우 “실패하면 안 된다”다. 뇌가 목표보다 위험에 더 집중하면 몸의 움직임도 달라진다. 공을 강하게 차는 대신 안전하게 밀어 넣으려 하고, 골문 구석보다 골키퍼가 막기 쉬운 중앙 근처로 향할 가능성이 커진다.

독일 연구팀은 2012년 조사 보고서 ‘빨리 차버리고 싶다, 기다리기 괴롭다: 페널티킥에서 나타나는 조급함과 회피 행동(Get it out the way. The wait’s killing me: Hastening and hiding during soccer penalty kicks)’을 내고 시간 압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연구팀은 압박을 받은 선수는 킥을 빨리 끝내려 들고, 골문을 똑바로 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축구팬 입장에서는 찰나이겠지만, 승부를 내야 하는 선수 입장에서는 그 몇 초가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다. 관중의 함성, 골키퍼의 움직임, 동료들의 시선, 국가대표라는 무게가 한꺼번에 밀려오기 때문이다. 기다릴수록 생각이 많아지고, 그럴수록 몸이 평소처럼 움직이지 않기 마련이다.

최근에는 승부차기 순서와 공정성도 연구 대상이 됐다. 독일과 스위스, 덴마크 공동 연구팀이 2024년 발표한 조사 보고서 ‘승부차기는 가혹하지만 번갈아 차는 순서는 공정하다(Penalty shoot-outs are tough, but the alternating order is fair)’가 대표적이다. 연구팀은 유럽 남자축구 11개 시즌 약 5만 개 킥 데이터를 분석해, 승부차기와 페널티킥의 성공률을  키커의 순서에 대입했다. 결론적으로 승부차기는 어렵지만, 기존의 A-B-A-B 교대 방식 자체가 반드시 불공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다.

선행연구들만 봐도 월드컵 승부차기는 축구의 축소판이면서 인간 심리의 실험실임을 알 수 있다. 둥근 공과 골대, 11m의 거리는 일면 단순하지만, 그 안에는 선수로서 명예와 공포감, 자기 통제 등 온갖 요소가 들어간다. 승부차기에 나서는 키커는 결정적 순간에 기량을 평소처럼 발휘하는 한결같음이 강조된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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