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직하고 첫 몇 달은 통장에 남은 돈이 넉넉해 보인다. 퇴직금에 모아둔 돈까지 합치면 한동안은 걱정 없을 것 같다. 그동안 바빠서 미뤄둔 것들을 하나씩 사들이고, 오랜만에 사람들도 만나며 지갑을 연다. 그러다 매달 들어오는 돈이 월급에서 연금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 서서히 실감 나기 시작한다. 고지서는 그대로인데 들어오는 돈만 절반으로 줄어든다. 병원비와 약값처럼 나이 들수록 늘어나는 지출도 생긴다.

노후 자금은 한 번 크게 쓰고 나면 다시 채우기가 어렵다. 일할 때는 다음 달 월급이 구멍을 메워줬지만 이제는 그럴 방법이 없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면서도 예전 씀씀이를 쉽게 줄이지 못한다. 나이 들어 통장을 비게 만드는 소비는 어디서 시작되는 걸까?

3위. 경조사비를 형편보다 많이 낸다
60대가 되면 경조사가 부쩍 잦아진다. 친구 자식 결혼식, 지인 부모상, 동창 칠순 잔치까지 한 달에도 몇 번씩 봉투를 준비해야 한다. 오랜만에 연락 온 사람이라도 얼굴을 보면 봉투를 얇게 내기가 민망하다. 남들은 얼마나 내는지 신경 쓰다 보면 금액이 슬금슬금 올라간다. 일할 때 내던 금액을 그대로 내는 경우도 많다. 부부가 함께 가는 자리면 봉투 두 개를 따로 챙기기도 한다.
연금으로 생활하는 입장에서 경조사비는 결코 작은 돈이 아니다. 몇 번만 겹쳐도 한 달 생활비가 휘청인다. 봉투 값을 맞추느라 장바구니를 줄이는 일까지 생긴다. 한번 올린 금액은 다시 낮추기 어렵고,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한다는 부담도 따라온다. 친한 정도에 따라 금액을 미리 정해두고 그 선을 지키는 게 좋다. 형편에 맞게 낸 봉투를 두고 뭐라 하는 사람과는 어차피 오래가기 어렵다.

2위. 잘 쓰지도 않을 가구와 가전을 바꾼다
자식들이 모두 독립하고 나면 집이 갑자기 넓어 보인다. 빈방을 보다가 새 살림으로 분위기를 바꾸고 싶어진다. 큰 냉장고, 대형 텔레비전, 고급 소파를 들이며 이제는 나를 위해 써도 된다고 생각한다. 매장 직원이 권하는 최신 기능까지 이것저것 붙이다 보면 견적은 금세 불어난다. 할부로 나눠 내면 부담이 덜하다는 말에 쉽게 계약서에 서명한다. 자식들이 오면 쓸 거라며 손님용 물건까지 새로 장만한다.
막상 들여놓고 나면 두 사람이 쓰기엔 너무 크다. 냉장고 절반은 비어 있고, 넓은 소파에는 한 사람만 앉는다. 전기요금과 관리비는 오르고, 고장 나면 수리비도 만만치 않다. 식구가 줄었으면 살림도 그에 맞게 줄이는 게 맞다. 지금 쓰는 물건이 멀쩡하다면 바꾸지 않는 것만으로도 노후 자금을 지킬 수 있다.

1위. 남 보라고 비싼 외제차를 산다
평생 국산 소형차만 몰다가 은퇴 선물로 외제차를 사는 경우가 있다. 동창 모임에 타고 나가면 다들 한 번씩 쳐다본다. 아파트 주차장에서도 왠지 어깨가 펴진다. 그동안 고생한 나에게 이 정도는 해줘도 된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이 어떻게 볼지가 차를 고르는 가장 큰 기준이 된다.
문제는 차를 산 뒤부터 시작된다. 매달 나가는 할부금에 보험료, 자동차세까지 연금의 상당 부분을 잡아먹는다. 부품값과 정비비는 국산차의 몇 배라 작은 고장에도 수리비가 수십만 원씩 나온다. 정작 차를 타는 날은 일주일에 한두 번뿐이다. 나이가 들수록 운전대를 잡는 날은 점점 줄어든다. 비싼 차는 주차장에 서 있는 날이 훨씬 많아진다. 남에게 보이는 기쁨은 며칠이면 끝나지만 할부금은 몇 년 동안 꼬박꼬박 빠져나간다. 노후의 차는 나를 실어 나르는 도구면 충분하다.

노후 소비의 기준은 남의 눈이 아니라 내 통장이어야 한다. 체면 때문에 쓴 돈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 덜 쓰고 오래 버티는 사람이 마지막까지 여유를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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