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식 집에 들어가 사는 순간부터, 아무리 내 자식이 사는 곳이고 내 이름으로 보탠 집이라 해도 그곳은 더는 마음 편한 내 집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시간이 흐르며 뒤늦게 알게 된다. 냉장고 문 하나 여는 것도, 텔레비전 채널 하나 돌리는 것도, 심지어 걸음걸이의 발소리와 헛기침 하나까지도 매번 눈치부터 살피는 조심스러운 일로 바뀌어버린다. 가족이 사는 집이고 처음엔 분명 반갑게, 진심으로 나를 반겨준 곳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작 그 집에서 손님보다도 더 조심스러운 존재로 조용히 밀려나는 게 냉정한 현실이다. 서둘러 짐 싸서 내려간 시골집도, 마음 급해서 미리 알아본 요양원도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조금씩 다를 뿐 그 속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60대 이후 인생에서 가장 뼈아픈 후회는 요란한 큰 사건 한 번이 아니라, 이렇게 조용한 일상 하나하나가 아무도 모르게 쌓이고 쌓여서 시작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주변에서는 다들 그 정도면 나쁘지 않은, 오히려 꽤 현명한 선택이라고 별생각 없이 손쉽게 말을 얹곤 한다. 자식 집도, 시골살이도, 요양원도 막상 결정을 내리는 그 순간에는 저마다 그럴듯한 명분과 이유가 늘 넉넉하게 준비되어 있는 법이다. 하지만 그 길을 실제로 먼저 걸어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까이서 하나둘 들어보면, 그 결이 사뭇 다르게, 때로는 정반대로 다가온다는 걸 알게 된다. 기대했던 편안함보다 낯선 긴장감과 매일의 눈치가 먼저 쌓였다는 쪽이 오히려 훨씬 더 흔한 결말인 경우가 많다. 겉으로는 더없이 합리적이고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큼 자연스러워 보이는 이 세 가지 선택이 정작 실제 노후를 어떻게 조금씩, 소리 없이 무너뜨리는지, 지금부터 순위를 매겨 짧고 굵게 하나씩 짚어본다.

3위. 자식 집으로 들어가 사는 것
자식이 먼저 손을 내밀어주면 그것만으로도 지난 세월의 고생이 다 보상받는 듯한, 말로는 다 표현 못 할 크고 벅찬 위안이 된다. 처음 몇 주는 며느리도 사위도 유독 살갑고 다정하며, 손주 역시 좀처럼 곁을 떠나지 않으려 하며 하루 종일 밝은 재롱을 부린다. 하지만 겨우 한 달이라는 시간만 지나면 집 안 공기는 눈에 띄게, 그리고 확실하게 서늘해지기 시작한다. 물건 위치를 편하게 바꾸는 사소한 일이나 손주에게 간식 하나 건네는 순간에도, 말은 안 해도 조용한 눈치가 어김없이 따라붙는다. 새벽에 목이 말라 물 한 잔 마시러 나가는 것조차 주방 쪽 인기척부터 먼저 살피는 습관이 어느새 몸에 배어버린다.

2위. 공기 좋다고 무작정 시골로 내려가는 것
마당 딸린 시골집과 사계절 맑은 공기, 텃밭에서 갓 딴 채소는 화면 너머로 볼 때는 유독 근사하고 부러울 만큼 여유로워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살던 집을 다 정리하고 짐까지 풀고 나서야 비로소 냉정한 현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막상 응급 상황이 생겨도 가장 가까운 병원까지 차로 한 시간 넘게 걸리는 외진 동네가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것도 살아보고 나서야 알게 된다. 두부 한 모, 밑반찬 하나 사러 가는 그 소소한 외출조차 삼십 분씩 차를 몰아야 하는 일이 일상처럼 반복된다. 몸이 갑자기 안 좋아지는 결정적인 순간, 평소엔 느긋하고 여유롭게만 느껴지던 그 물리적인 거리는 곧장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로 바뀌어버린다.

1위. 몸이 아직 멀쩡한데 서둘러 요양원에 들어가는 것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싫다는 말, 아직 정신 있을 때 미리 정해두는 게 낫다는 말 한마디로 너무 성급하게 결정이 내려지는 경우가 생각보다 훨씬 더 적지 않다. 처음 몇 달은 마음 한구석에 남은 죄책감 때문에 자식들의 발걸음이 오히려 눈에 띄게 유독 잦아지곤 한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그 발걸음은 눈에 띄게, 그리고 서서히, 하지만 확실하게 뜸해지기 시작한다. 아침에 무엇을 먹을지, 언제 밖에 나갈지, 몇 시에 잠들지, 심지어 창문을 여닫는 것조차 스스로 정하지 못하는 생활이 하루하루 조용히 이어진다. 그렇게 스스로 결정할 힘, 즉 삶에 대한 최소한의 통제권을 잃은 몸과 마음이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함께 무너지는 경우가 결코 드물지 않다.

자식 집, 시골, 요양원. 순위는 이렇게 갈렸지만 이 세 가지 선택 모두 그 처음 시작은 저마다의 배려와 걱정, 그리고 소박한 기대에서 비롯되었다. 문제는 바로 그 고마운 배려를 별다른 의심도 없이 그대로 덥석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눈에 띄지 않게 아주 조용히 시작된다는 점이다. 냉장고 문 하나, 오늘 하루의 사소한 일정 하나, 잠드는 시간 하나까지 내 손에서 서서히, 하지만 확실하게 빠져나가 버린다. 낡고 좁아도 내 손으로 문을 잠그고 들어오는 그 평범한 하루가 사실은 지금껏 살아오며 누려온 것 중 가장 큰 사치였다는 걸 다 잃고 나서야 뒤늦게 깨닫게 된다. 내일 아침엔 부디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남의 집도 아닌 내 집에서 냉장고 문부터 열어보는, 그런 평범하고도 소중한 하루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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