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젊을 때는 결혼식이나 장례식 연락이 오면 웬만하면 참석했다. 친척 모임도 챙기고 직장 동료의 경조사까지 빠지지 않는 것이 사람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50대, 60대가 되면서 “이제 꼭 가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단순히 사람이 싫어진 것이 아니라 남은 인생에서 관계를 바라보는 기준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평생 챙겼지만 돌아오는 관계는 생각보다 적어서
수십 년 동안 결혼식과 돌잔치, 장례식까지 빠짐없이 다녔지만 정작 자신에게 일이 생겼을 때 연락조차 없는 사람을 경험하기도 한다. 젊을 때는 ‘언젠가는 다시 보겠지’라며 넘겼지만 나이가 들수록 일방적으로 유지되는 관계에 지치게 된다.
그래서 이제는 연락처에 몇 명이 저장되어 있느냐보다 어려울 때 서로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인지가 더 중요해진다.

체력과 돈을 쓰면서까지 모든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 않아서
경조사 한 번을 다녀오려면 교통비와 축의금·부의금은 물론 하루의 시간과 체력까지 들어간다. 젊을 때는 그것을 당연한 사회생활이라고 생각했지만 5060이 되면 자신의 건강과 가족, 노후에 사용할 돈과 시간이 더 소중해진다.
만나고 돌아오면 즐거운 관계가 아니라 의무감과 피로만 남는 관계라면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게 된다.

앞으로 만날 횟수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걸 깨달아서
50대가 넘어가면 사람들은 시간에도 끝이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실감한다. 그래서 예전처럼 ‘싫어도 사람인데 챙겨야지’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관계를 붙잡지 않는다.
1년에 몇 번 없는 주말을 불편한 사람에게 쓰기보다 배우자와 밥을 먹고, 오래된 친구를 만나고, 혼자 편안하게 보내는 쪽을 선택하기 시작한다.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가 줄어드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람이 싫어져서가 아니라 남은 시간을 누구에게 쓸 것인지 진지하게 선택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관계를 무조건 끊는 것이 현명하다는 뜻은 아니다. 관계를 지나치게 줄이면 정작 도움이 필요할 때 고립될 수도 있고, 귀찮다는 이유로 소중한 사람까지 놓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숫자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의무로만 남은 관계와 서로 마음을 주고받는 관계를 구분하는 것이다. 젊을 때 인간관계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아느냐의 문제였다면, 5060 이후에는 남은 시간을 누구와 보내고 싶은가의 문제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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