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큰아이 유치원 학부모로 처음 만난 친구 셋이 있다. 올해로 꼭 30년째다.
환갑을 앞두고 처음으로 셋이서 여수로 2박 3일 여행을 가기로 했다. 단체 대화방이 며칠 내내 시끄러웠다.
숙소는 어디로 할지, 뭘 먹을지, 어디를 갈지. 나는 매번 같은 답을 보냈다.
“난 다 좋아. 너희 편한 대로 해.”

학부모회 회장을 맡았던 친구가 일정을 척척 짰다. 셋 중 막내인 친구는 출발 일주일 전에 한 줄을 올렸다.
“나 무릎 안 좋아서 계단 많은 데는 빼줘. 밤 열 시엔 꼭 잘 거야.”
나는 그 글을 보며 참 까다롭다고 생각했다.

새벽 다섯 시에 울린 알람
첫날 새벽, 회장 친구가 우리를 흔들어 깨웠다.
“해 뜨는 거 보러 가야지. 얼른 일어나.”
나는 원래 아침잠이 많다. 그래도 아무 말 없이 따라나섰다. 바닷바람에 몸이 덜덜 떨렸다.
점심은 친구가 미리 찾아둔 게장집이었다. 나는 비린 걸 잘 못 먹는다. 밥 한 공기에 김만 싸서 겨우 비웠다.
막내는 계단 많은 전망대 앞에서 “난 아래 카페에 있을게” 하고 웃으며 빠졌다. 혼자 커피를 마시는 막내가 그날따라 부러웠다.
둘째 날에는 수산시장과 아울렛을 연달아 돌았다. 세 시간 넘게 서 있었더니 발바닥이 불이 났다. 그래도 나는 좀 쉬자는 말 한마디를 하지 못했다.
밤에 숙소에 누워 혼자 생각했다. 30년을 알았는데 내가 뭘 좋아하는지 그렇게 모르나.

마지막 날 밤, 친구가 내민 휴대폰
여행 마지막 밤, 회장 친구가 들뜬 얼굴로 휴대폰을 내밀었다.
“내일 오전에 요트 투어 예약했어. 1인당 7만원씩만 보내.”
나는 배멀미가 심하다. 그 사실을 30년 친구가 모를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이틀 동안 삼켰던 말들이 한꺼번에 올라왔다.
“너는 어떻게 한 번을 안 물어봐? 진짜 이기적인 인간이다.”
방 안이 조용해졌다. 회장 친구가 한참 나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너 처음부터 다 좋다고 했잖아. 30년 동안 네가 뭐 싫다고 한 적 있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돌아누웠다.
다음 날 요트 투어는 회장 친구 혼자 다녀왔다.

돌아오는 버스, 그리고 석 달
돌아오는 고속버스 안에서 우리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바다만 멀거니 바라봤다. 막내만 중간에서 귤을 까서 양쪽에 나눠줬다.
그 뒤로 회장 친구와는 연락하지 않는다. 단체 대화방에도 막내 혼자 가끔 안부를 남긴다.
처음엔 그 친구가 이기적이라서 이렇게 됐다고 생각했다.
한 달쯤 지나 막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걔 여행 가기 전에 너 좋아할 만한 데 찾는다고 밤새 검색했대. 근데 네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결국 자기 좋은 데로 다 정했다더라.”
전화를 끊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제야 그날 밤 회장 친구가 한 말이 다시 떠올랐다. 나는 30년 동안 단 한 번도 내가 원하는 걸 말한 적이 없었다. 말하지 않은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면서, 몰라준다고 혼자 서운해했다.

다음 달, 동네 친구들과 경주에 가기로 했다. 단체 대화방에 처음으로 이렇게 적었다.
“나 아침잠 많아서 9시 전엔 못 나가. 그리고 회는 빼줘.”
친구들은 웃으며 알겠다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생각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경주에서의 사흘은 오랜만에 몸도 마음도 편했다.
그날 밤, 휴대폰 연락처에서 회장 친구 이름을 한참 들여다봤다.
30년 만에 처음으로 내 마음을 말할 수 있게 됐는데, 그 첫 번째 상대가 그 친구였으면 어땠을까.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