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 기억력과 문제 해결 능력은 자연히 떨어진다. 다만 말을 이해하고 처리하는 뇌의 언어 시스템은 놀라울 정도로 젊은 상태를 유지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특히 두 개 이상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알츠하이머병에 따른 뇌 변화에 더 오래 버틸 가능성을 보여주는 연구들이 잇따라 외국어 사용과 뇌 노화의 관계에 관심이 모였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와 보스턴대학교 공동 연구팀은 지난 달 말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나이 들어도 뇌의 언어 네트워크가 상당 부분 보존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17~39세 483명과 41~80세 64명을 모아 뇌를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촬영했다. 비교 대상은 문장을 이해하는 등 언어 처리를 담당하는 언어 네트워크와 작업기억, 문제 해결 등 여러 인지 작업에 관여하는 다중요구 네트워크였다.
결과는 뚜렷하게 갈렸다. 중·고령자의 다중요구 네트워크는 젊은 사람보다 활성도가 약하고 범위도 좁았다. 사람마다 활성화되는 위치의 차이도 커졌으며 네트워크 내부의 기능적 연결성 역시 떨어졌다. 나이가 들면서 실행기능과 문제 해결 능력이 쇠퇴하는 기존 연구 결과와 일치했다.

알츠하이머에 걸렸거나 전 단계인 사람도 두 가지 이상 언어를 사용할 경우 기억력과 인지장애 정도는 정상인보다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사진=pixabay」
다만 언어 네트워크는 달랐다. 중·고령자 역시 젊은 사람만큼 강하고 선택적으로 언어에 반응했다. 언어 기능이 주로 좌뇌에 집중되는 편측화와 네트워크 내부의 연결성도 거의 유지됐다.
다국어 사용이 뇌 노화에 추가적인 이점을 준다는 주장은 오래됐다. 캐나다 콩코디아대학교 크리스티나 콜터 박사 연구팀이 지난 5월 낸 실험 보고서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렸거나 발병 위험이 있는 고령자를 대상으로 단일언어 사용자와 다언어 사용자의 뇌를 비교해 주목됐다.
연구 대상에는 인지기능이 정상인 사람부터 주관적 인지저하, 경도인지장애, 경증 알츠하이머병 환자까지 포함됐다. 연구팀은 각 집단에서 한 가지 언어만 아는 사람과 두 가지 이상 언어를 아는 사람을 절반씩 구성하고 나이와 성별, 교육기간, 기억력과 인지장애 정도 등을 최대한 일치시켰다.
이중언어 사용자가 뇌 노화 과정에서 이득을 본다는 연구는 많다. 「사진=인공지능(챗GPT) 생성 이미지」
알츠하이머병 환자에서 흥미로운 차이가 두드러졌다. 다언어 사용자는 단일언어 사용자보다 뇌의 기본 네트워크 내부 연결성이 더 낮았다. 일반적으로 알츠하이머병이 진행되면서 나타날 수 있는 변화다. 그런데도 두 집단의 기억력과 인지장애 정도는 비슷했다. 연구팀은 다언어 사용자가 더 많은 알츠하이머병 관련 뇌 변화를 안고 있으면서도 비슷한 인지기능을 유지했을 가능성에 주목했다.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경험이 뇌 손상에 대응할 수 있는 일종의 인지예비력과 관련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샌프란시스코 연구팀의 지난 3월 연구 결과에서도 관찰됐다. 연구팀은 기억상실형 알츠하이머병 환자 136명과 알츠하이머병과 연관될 수 있는 원발진행실어증의 하나인 로고페닉 변이 환자 88명의 MRI를 분석했다.
이 연구에서도 이중언어 사용자는 일부 뇌 영역의 회백질 부피가 단일언어 사용자보다 오히려 적었는데도 인지검사 성적은 비슷했다. 학자들은 이중언어 사용이 뇌의 손상을 막는다기보다 손상이 있어도 기능을 더 오래 유지하도록 돕는 인지예비력과 관련됐을 가능성을 떠올렸다.
이중언어 사용이 치매 등 인지 관련 질환의 예방에 좋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아직 없다. 「사진=인공지능(챗GPT) 생성 이미지」
평생 두 언어를 사용한 알츠하이머병 환자 102명과 단일언어 환자 109명을 비교한 2010년 연구에서는, 이중언어 사용자의 증상 발생 시점이 평균 5.1년, 진단 시점은 4.3년 늦었다. 이 연구는 두 언어 사이를 지속적으로 오가는 과정이 뇌의 인지예비력을 높일 가능성을 보여줘 학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다만 외국어를 배우면 뇌가 덜 늙는다는 결론을 내리기는 이르다. 올해 4월 나온 실험 보고서에 따르면, 이중언어 사용이 인지노화나 치매를 막아주는지에 대한 연구 결과는 여전히 일관성이 없다. 단면·후향 연구에서는 치매 증상이 늦게 나타난다는 결과가 있지만 장기간 사람들을 추적한 종단 연구에서는 치매 발생 위험이나 인지저하 속도에서 뚜렷한 효과를 찾지 못한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최근 연구들이 보여주는 방향은 흥미롭다. 나이가 들어 실행기능을 담당하는 뇌 네트워크가 약해지는 동안에도 언어 네트워크는 상대적으로 강하게 유지된다. 여기에 평생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경험이 더해질 경우 뇌가 노화나 질병으로 손상돼도 기능을 유지할 여력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외국어가 뇌의 노화를 직접 막아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새로운 말을 배우고 여러 언어를 오가며 평생 사용하는 경험이 늙어가는 뇌에 주는 좋은 영향은 분명 있다는 게 학계의 중론이다.
김한별 기자 khstar@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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