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도 오지 않는 날에도 수건의 각을 맞춰 개어둔다. 혼자 먹는 밥상인데도 반찬은 굳이 그릇에 옮겨 담고서야 수저를 든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딸이 물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별생각 없이 대답했다, “내가 보잖아.”

걸레질 한 번의 위안
살아보니 세상에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너무 많았다. 자식의 인생도, 사람과의 관계도, 몸 상태도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하지만 집은 달랐다. 걸레질 한 번이면 딱 그만큼 깨끗해지고 닦은 만큼 반짝였다. 내가 손댄 만큼 정직하게 달라지는 공간이 있다는 게 그렇게 위안이 될 줄은 몰랐다.

새벽마다 비우는 서랍
마음이 복잡한 날일수록 손이 더 바빠졌다. 힘든 일이 있던 밤에는 늦게까지 냉장고를 정리했고 잠이 오지 않는 새벽에는 괜히 서랍을 열어 비웠다.
어질러진 방을 견디지 못했던 게 아니다. 사실은 어질러진 마음을 견디지 못했던 거였다. 바닥을 닦으며 머릿속을 비우고 물건을 제자리에 놓으며 흔들린 하루를 조금씩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살림이라 부르는 이유
집안일을 살림이라고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걸 나이가 들고서야 알았다. 나를 살리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세상 속에서 적어도 내게 허락된 이 작은 공간만큼은 다스릴 수 있었다. 흔들린 삶의 중심을 다시 내 손으로 붙잡는 일, 그게 매일 방을 치우는 이유였다.

오늘도 딸은 전화로 엄마 또 청소했어, 하고 웃으며 물었다. 나는 그냥 웃으며 넘겼지만 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방을 닦으며 조용히 나를 다독이고 있었다는 것을.










댓글0